2009/07/08 02:10
隔海相望之邦/通古今之變
와신상담으로 시작을 살살 해보려니 이거 원 사전에 풀어놔야 할 설이 장난이 아니구만..머리 속에 들어있는 걸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말로는 하겠는데
글로 쓰려니 영 찜찜해서 그냥 정보의 茫茫大海, 인터넷에 의지했다.
吴越争霸하고 바이두에 툭 치니까 눈에 띄는 사이트가 있어서 내용을 쓱 보니 나름 간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듯 해서 요걸로 함 공부도 할겸 쓱싹쓱싹 포스팅..고고!!
우선 사이트는 그 이름도 유명한 CCTV(中央电视台)
주소는 http://www.cctv.com/military/history/2003-01-08/302.shtml임...몰펌...ㅋㅋ
천룡팔부의 모용복 가문의 절기인 以彼之道还治彼身을 구사해 남의 것 빼끼고 시치미 떼는 중국을 향해 나도 함 발뺌신공 구사~아싸!!! 그나저나 지금 생각해보니 김용의 천룡팔부에 나오는 모용복 가문의 무공 특징이 은근히 중국을 닮은 것 같기도 하네...
以彼之道还治彼身이라...흠...(중국을 비하하고자 하는 뜻이 아님)

(살짝 번역하면)
오월 전쟁은 춘추시대 동남부 지역의 신흥강국 오나라와 월나라가 세력확장을 통해 천하 패권을 다투던 과정에 있었던 전쟁이다.
주나라 경왕 원년(기원전 544년), 오나라 여제가 월나라 포로의 피습을 받아 숨을 거뒀다. 주나라 경왕 10년(기원전 510년), 오나라가 군사를 대거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에 앞서 후방의 우환거리를 해결하고자 월나라를 침공, 현 절강성 가흥 아랫쪽에 해당하는 취리지역을 점령했다. 주나라 경왕 15년, 오나라 주력병력이 초나라 수도 영을 점령하여 빈틈이 생기자 월나라가 오나라 국경지역을 침공하면서 양 국간 긴장관계는 더욱 고조되었다. 오나라가 중원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월나라를 복속시켜 후방의 위협거리를 제거해야 했고, 월나라 역시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필히 오나라를 굴복시켜야 했다. 그렇기에 양국은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었다. 오, 월 지역은 강남 수향(水鄕), 즉 물의 도시라 불리며 "배가 수레요, 노가 말이로다"(월절서, 기지전)이라 알려질정도였기에 수상전이 잦았다. 이 때 수군인 "주사(舟師)"는 이미 신종 병과로 인정받아 단독 작전 및 전투 수행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오와 월의 수군은 누선을 비롯해 대익, 중익, 소익등 3가지 전선 및 돌모, 교선 등 부가병선을 갖추고 있었다. 주요 전선인 대익은 그 길이가 20미터에 달하고 폭은 2.7미터, 병사가 26명, 노 젓는 노수가 50명, 축로수(?)가 3명, 대형 끌이창 및 도부수가 각 4명 씩, 그리고 감독관, 잡일꾼, 궁수장이 각 1명씩으로 병선을 지휘하는 장수까지 총 91명이 승선가능했다. (<태평요람> 권315 인<오자서 수전병법>). 수전의 기본 전개 형태는 먼저 활(弩)을 쏘고 근접전을 펼치다가 배를 서로 붙여 상대 병선에 올라 단병접전을 벌이는 식이었는데 가끔은 돌모로 적선에 부딪혀 격파하는 방식도 구사했다.
어렵고 보다보니 이것저것 또 찾아봐야 할 것들도 생기고...일만 만든듯...ㅎㅎ
수군 관련 전문용어인데 다 고어다 보니...
바로 글을 치려고 하다가 이미지로 만들어 봤는데 영 흐릿한게...쩝...워드로 작성하고 오픈캡처로 캡처해서 올려서 그런지 화질이 좀 안습...포토샵이나 인디자인으로 만드는거 보니까 깔끔하던데...집 컴이 딸리기도 하고 새로 배우자니 좀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와신상담의 주인공들 바로 직전 인물인 오나라 여제 공은 어찌 사열을 하다가 포로의 칼에 맞았을꼬? 참.....어이가 없기도 하고...포로를 잘 안 묶어 놨나? 누가 내통을 하지 않고서야...지못미...
다음번에 올릴 내용에는 본격적인 스토리가 간~~략하게 나올 듯하다...
그럼...그때 다시 스터디...고고!!!
吴越争霸하고 바이두에 툭 치니까 눈에 띄는 사이트가 있어서 내용을 쓱 보니 나름 간결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듯 해서 요걸로 함 공부도 할겸 쓱싹쓱싹 포스팅..고고!!
우선 사이트는 그 이름도 유명한 CCTV(中央电视台)
주소는 http://www.cctv.com/military/history/2003-01-08/302.shtml임...몰펌...ㅋㅋ
천룡팔부의 모용복 가문의 절기인 以彼之道还治彼身을 구사해 남의 것 빼끼고 시치미 떼는 중국을 향해 나도 함 발뺌신공 구사~아싸!!! 그나저나 지금 생각해보니 김용의 천룡팔부에 나오는 모용복 가문의 무공 특징이 은근히 중국을 닮은 것 같기도 하네...
以彼之道还治彼身이라...흠...(중국을 비하하고자 하는 뜻이 아님)
(살짝 번역하면)
오월 전쟁은 춘추시대 동남부 지역의 신흥강국 오나라와 월나라가 세력확장을 통해 천하 패권을 다투던 과정에 있었던 전쟁이다.
주나라 경왕 원년(기원전 544년), 오나라 여제가 월나라 포로의 피습을 받아 숨을 거뒀다. 주나라 경왕 10년(기원전 510년), 오나라가 군사를 대거 일으켜 초나라를 치기에 앞서 후방의 우환거리를 해결하고자 월나라를 침공, 현 절강성 가흥 아랫쪽에 해당하는 취리지역을 점령했다. 주나라 경왕 15년, 오나라 주력병력이 초나라 수도 영을 점령하여 빈틈이 생기자 월나라가 오나라 국경지역을 침공하면서 양 국간 긴장관계는 더욱 고조되었다. 오나라가 중원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월나라를 복속시켜 후방의 위협거리를 제거해야 했고, 월나라 역시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필히 오나라를 굴복시켜야 했다. 그렇기에 양국은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을 치룰 수 밖에 없었다. 오, 월 지역은 강남 수향(水鄕), 즉 물의 도시라 불리며 "배가 수레요, 노가 말이로다"(월절서, 기지전)이라 알려질정도였기에 수상전이 잦았다. 이 때 수군인 "주사(舟師)"는 이미 신종 병과로 인정받아 단독 작전 및 전투 수행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오와 월의 수군은 누선을 비롯해 대익, 중익, 소익등 3가지 전선 및 돌모, 교선 등 부가병선을 갖추고 있었다. 주요 전선인 대익은 그 길이가 20미터에 달하고 폭은 2.7미터, 병사가 26명, 노 젓는 노수가 50명, 축로수(?)가 3명, 대형 끌이창 및 도부수가 각 4명 씩, 그리고 감독관, 잡일꾼, 궁수장이 각 1명씩으로 병선을 지휘하는 장수까지 총 91명이 승선가능했다. (<태평요람> 권315 인<오자서 수전병법>). 수전의 기본 전개 형태는 먼저 활(弩)을 쏘고 근접전을 펼치다가 배를 서로 붙여 상대 병선에 올라 단병접전을 벌이는 식이었는데 가끔은 돌모로 적선에 부딪혀 격파하는 방식도 구사했다.
어렵고 보다보니 이것저것 또 찾아봐야 할 것들도 생기고...일만 만든듯...ㅎㅎ
수군 관련 전문용어인데 다 고어다 보니...
바로 글을 치려고 하다가 이미지로 만들어 봤는데 영 흐릿한게...쩝...워드로 작성하고 오픈캡처로 캡처해서 올려서 그런지 화질이 좀 안습...포토샵이나 인디자인으로 만드는거 보니까 깔끔하던데...집 컴이 딸리기도 하고 새로 배우자니 좀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와신상담의 주인공들 바로 직전 인물인 오나라 여제 공은 어찌 사열을 하다가 포로의 칼에 맞았을꼬? 참.....어이가 없기도 하고...포로를 잘 안 묶어 놨나? 누가 내통을 하지 않고서야...지못미...
다음번에 올릴 내용에는 본격적인 스토리가 간~~략하게 나올 듯하다...
그럼...그때 다시 스터디...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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