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09 00:55
隔海相望之邦/通古今之變
오월쟁패 서두가 넘 길다는 느낌도 든다. 별로 길지 않을 듯 해서 공부도 할겸 살살 해볼 요량이었는데 이건 뭐~와우~어쩜 좋니...不能自拔~ 에휴~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지
계속 가볼까나~
이번에는 구천이 어떻게 부차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는지 대략적인 방법이 나온다.
(해석)
이미 당시부터 노는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차나 전선에는 모두 노가 장착되었고 전투의 승패를 마지막 순간의 돌격이 가름하는 전투형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구천은 궁노 발사법에 능통한 진음을 데려와 조준, 연사는 물론 노의 탄력과 화살의 무게 비례(일석의 힘으로 당길 때는 화살 무게는 일량이 되야 함)등의 노를 다루는 법을 배워 모든 군사들이 궁노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그리고 검극에 뛰어난 월녀를 불러와 백병전에 필요한 무술을 교육해 일당백의 군대를 조직했다. 월나라 사람들은 본디 목숨을 걸고 싸우길 즐기며 각개전투에 익숙했다. 구천은 지금까지의 필부의 용맹을 금지하고 규율을 강조하여 전쟁을 할 때 통솔조직의 명령에 따라 전군의 작전능력을 충분히 끌어올리는 일사불란한 일관전투 체제를 구축했다. 지휘자의 명령에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그에 반하는 자는 참하고 그 처자식은 팔아버렸다. 외교적으로는 "오왕 부차가 제와 진을 공격하고 초와는 원수를 진" 상황을 이용, "제, 진과 우호관계를 맺고 초와는 은밀히 관계를 닦는 반면 오에는 계속 충성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했다.(<오월춘추, 구천귀국외전>) 오에 계속 충성을 했다는 것은 곧 주나라 문왕이 상나라 주왕에 대해 외교전을 펼친 전략를 쫓아 비전투적 수단으로 적을 와해하고 힘을 뺐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거짓 충성을 보임으로써 오왕 부차가 월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중원에 진출해 패권을 다투는데 힘을 집중하도록 하고 하고 싶은 바대로 모두 할 수 있도록 부추김으로서 오왕이 궁궐을 증축하고 여색을 밝혀 국력을 낭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뇌물로 매수를 해 용간계를 구사하여 오나라 권력층의 내부와해는 물론이고 단결력을 약화시켰다. 이렇게 10년이 지나자 월나라는 황폐했던 국토가 풍요로워지고 백성들이 왕실을 따라 국력이 되살아났다. 월나라 군대는 최신 무기를 갖추고 강한 훈련을 하여 필사즉생의 정예부대로 재탄생했다.
월왕구천!!
나중에 문종을 토사구팽했건 어쨌든 그건 지도층 내부 문제고 황폐화된 월나라를 되살리고 백성들을 하나로 응집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룬 지도자이다.
어째 우리나라는 이런 지도자조차도 하나 안나오는지...이미 건국 60돌이 지났는데...줸장...신하들 뽕 뽑아서 나라 바로 세우고 경제 살리고 국민들 민생 안정시키고 나서 그 신하들 다 내쳐도 좋으니 국민들 맘 편하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얼마나 좋겠누~어휴~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우국지사적 발언을...흠...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도명의 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속에서 구천의 와신상담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
노라 함은 활을 좀더 편하게(?)ㅎㅎ 기계적 힘을 빌어 발사를 하는 무기로 고대 전쟁에서는 물론 중세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 무기이다.
그래도 활하면 대한민국이고 우리 대쥬신...흠...이 용어가 국수 사학의 산물이든 어쨌든 어감이 너무 좋아서 난 우리 조상들을 일컫을 때 즐겨사용한다...
계속 가볼까나~
이번에는 구천이 어떻게 부차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는지 대략적인 방법이 나온다.
(해석)
이미 당시부터 노는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전차나 전선에는 모두 노가 장착되었고 전투의 승패를 마지막 순간의 돌격이 가름하는 전투형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구천은 궁노 발사법에 능통한 진음을 데려와 조준, 연사는 물론 노의 탄력과 화살의 무게 비례(일석의 힘으로 당길 때는 화살 무게는 일량이 되야 함)등의 노를 다루는 법을 배워 모든 군사들이 궁노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교육하였다. 그리고 검극에 뛰어난 월녀를 불러와 백병전에 필요한 무술을 교육해 일당백의 군대를 조직했다. 월나라 사람들은 본디 목숨을 걸고 싸우길 즐기며 각개전투에 익숙했다. 구천은 지금까지의 필부의 용맹을 금지하고 규율을 강조하여 전쟁을 할 때 통솔조직의 명령에 따라 전군의 작전능력을 충분히 끌어올리는 일사불란한 일관전투 체제를 구축했다. 지휘자의 명령에 따르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그에 반하는 자는 참하고 그 처자식은 팔아버렸다. 외교적으로는 "오왕 부차가 제와 진을 공격하고 초와는 원수를 진" 상황을 이용, "제, 진과 우호관계를 맺고 초와는 은밀히 관계를 닦는 반면 오에는 계속 충성을 보이는" 전략을 구사했다.(<오월춘추, 구천귀국외전>) 오에 계속 충성을 했다는 것은 곧 주나라 문왕이 상나라 주왕에 대해 외교전을 펼친 전략를 쫓아 비전투적 수단으로 적을 와해하고 힘을 뺐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거짓 충성을 보임으로써 오왕 부차가 월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중원에 진출해 패권을 다투는데 힘을 집중하도록 하고 하고 싶은 바대로 모두 할 수 있도록 부추김으로서 오왕이 궁궐을 증축하고 여색을 밝혀 국력을 낭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뇌물로 매수를 해 용간계를 구사하여 오나라 권력층의 내부와해는 물론이고 단결력을 약화시켰다. 이렇게 10년이 지나자 월나라는 황폐했던 국토가 풍요로워지고 백성들이 왕실을 따라 국력이 되살아났다. 월나라 군대는 최신 무기를 갖추고 강한 훈련을 하여 필사즉생의 정예부대로 재탄생했다.
나중에 문종을 토사구팽했건 어쨌든 그건 지도층 내부 문제고 황폐화된 월나라를 되살리고 백성들을 하나로 응집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룬 지도자이다.
어째 우리나라는 이런 지도자조차도 하나 안나오는지...이미 건국 60돌이 지났는데...줸장...신하들 뽕 뽑아서 나라 바로 세우고 경제 살리고 국민들 민생 안정시키고 나서 그 신하들 다 내쳐도 좋으니 국민들 맘 편하고 먹고 살게만 해주면 얼마나 좋겠누~어휴~ 갑자기 내가 왜 이런 우국지사적 발언을...흠...여하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도명의 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속에서 구천의 와신상담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
노라 함은 활을 좀더 편하게(?)ㅎㅎ 기계적 힘을 빌어 발사를 하는 무기로 고대 전쟁에서는 물론 중세에 이르기까지 전쟁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 무기이다.
그래도 활하면 대한민국이고 우리 대쥬신...흠...이 용어가 국수 사학의 산물이든 어쨌든 어감이 너무 좋아서 난 우리 조상들을 일컫을 때 즐겨사용한다...
우리 대주신이 최고인데... 월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용했을라나...
월녀는 또 뭔지...무협지에 보면 나오는 월녀검...사조영웅전 강남칠괴의 막내였나...그 여자 한소영인가 했던 이가 이 월녀검을 사용한 것 같은데 그럼 그 월녀가 구천을 도운 월녀? 헐....
구천은 远交近攻이라는 전략을 확실하게 구사하고 부차는 远攻近攻이라는 무모한 전략을 택하니 될 턱이 있나...
(사족: 그러고 보면 소진苏秦의 연횡책连横策이나 장의张仪의 합종책合纵策은 이미 춘추시대에 굉장히 보편적으로 구사되었던 전략이네... 춘추5패春秋五霸라 불리는 제환공齐桓公, 진문공晋文公, 초장왕楚庄王, 오부차吴夫差, 월구천越勾践(때로는 진목공秦穆公, 송양공宋襄公, 오합려吴阖闾이 들어가기도 한다)이들이 버티고 있으면 합종책이 일반적이고 조금만 패자의 세력이 약해지면 연횡책이 난무하였다 판단된다.)
부차는 주위를 모두 적으로 만든데다 잦은 원정, 토목공사, 부역 등으로 오왕 합려가 손무, 오자서와 함께 닦아놓았던 국고를 탕진하고 국가의 근본을 말아먹어버린다.
君子报仇十年不晚이라 했던가?
구천은 10년도 모자라 20년을 기다렸으니...그의 복수에 대한 조급함을 범려가 잘 구슬려 억제시킨 것도 있지만 20년을 기다린 그의 인내력에 다시 한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구천의 복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백비(伯嚭)와 서시(西施)가 그들이다...오나라 내부부터 썩어가게 만든 인물...백비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간신이더라...서시야 뭐~중국 4대 미녀이니까...서시라...서시 관련 포스팅도 하나 해봐야겠다.
아직 한 3편정도 더 올려야 이놈의 와신상담 드라마 개시를 할 수 있겠구만...아후~
월녀는 또 뭔지...무협지에 보면 나오는 월녀검...사조영웅전 강남칠괴의 막내였나...그 여자 한소영인가 했던 이가 이 월녀검을 사용한 것 같은데 그럼 그 월녀가 구천을 도운 월녀? 헐....
구천은 远交近攻이라는 전략을 확실하게 구사하고 부차는 远攻近攻이라는 무모한 전략을 택하니 될 턱이 있나...
(사족: 그러고 보면 소진苏秦의 연횡책连横策이나 장의张仪의 합종책合纵策은 이미 춘추시대에 굉장히 보편적으로 구사되었던 전략이네... 춘추5패春秋五霸라 불리는 제환공齐桓公, 진문공晋文公, 초장왕楚庄王, 오부차吴夫差, 월구천越勾践(때로는 진목공秦穆公, 송양공宋襄公, 오합려吴阖闾이 들어가기도 한다)이들이 버티고 있으면 합종책이 일반적이고 조금만 패자의 세력이 약해지면 연횡책이 난무하였다 판단된다.)
부차는 주위를 모두 적으로 만든데다 잦은 원정, 토목공사, 부역 등으로 오왕 합려가 손무, 오자서와 함께 닦아놓았던 국고를 탕진하고 국가의 근본을 말아먹어버린다.
君子报仇十年不晚이라 했던가?
구천은 10년도 모자라 20년을 기다렸으니...그의 복수에 대한 조급함을 범려가 잘 구슬려 억제시킨 것도 있지만 20년을 기다린 그의 인내력에 다시 한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구천의 복수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백비(伯嚭)와 서시(西施)가 그들이다...오나라 내부부터 썩어가게 만든 인물...백비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간신이더라...서시야 뭐~중국 4대 미녀이니까...서시라...서시 관련 포스팅도 하나 해봐야겠다.
아직 한 3편정도 더 올려야 이놈의 와신상담 드라마 개시를 할 수 있겠구만...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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