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의 상황과는 별개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던진 여불위는 직접 돌파보다는 우회전술迂回戰術이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그는 일단 화양부인의 언니와 남동생을 찾아가 금은보화金銀寶貨를 진상進上하고 환심을 샀다. 어느 날 여불위는 “만약 다른 마마의 공자님이 후사가 될 경우 마마님 일가는 그 총애는 커녕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겁을 주었다. “그럼 어떡해야 하오?”라는 화양부인 언니와 남동생의 반응에 여불위는 조나라에 인질로 있는 이인을 그들에게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인이 조나라에서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어느 정도 세력을 구축한데다가 시서詩書에 밝고 품성이 방정하여 한단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하다고 소개했다.
지난 몇 년간 이인이 한단邯鄲에서 보여준 행적들이 이미 진나라 궁중에 상세히 전해진 덕분에 그들도 여불위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현재 화양부인께서 필요하신 공자는 바로 이인 공자입니다. 이인 공자는 매번 ‘화양부인은 내 친모親母보다도 날 더 아껴주시니 정말 하늘과도 같은 분이시오’라며 눈물을 훔치실 뿐 아니라 아니라 각국 빈객賓客들에게도 ‘내 함양咸陽에서 가장 생각나는 이는 딱 세 사람뿐으로 조부祖父이신 주공主公, 부친父親이신 안국군 전하, 그리고 화양부인이라오. 만약 화양부인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나, 이인도 없었을 것이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이자 “일단 화양부인께서 이인 공자를 양자로 들이신 후 안국군께서 후계자로 정하시면 훗날 필시 부인 가문의 대은대덕大恩大德에 감읍할 것이니 부인 가문의 앞날은 탄탄대로 뿐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그들은 화양부인을 설득해 여불위의 묘책대로 일을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화양부인은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그 고운 자태와 미소는 여전했다. 그 뇌쇄적인 매력으로 진나라 궁중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 미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진소왕秦昭王 조차도 안국군에게 “내 너를 태자로 삼은 것은 전적으로 태자비太子妃 때문이니라.”라고 하였고, 화양부인의 시어머니가 되는 진 소왕의 왕후王后는 그녀를 자신의 친딸처럼 아낄 정도였다.
그토록 왕실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화양부인도 후사後嗣가 없어 근심이 그치질 않았으나 여불위의 묘책을 듣고는 무거운 짐을 덜어놓게 되었다. 화양부인은 “조나라에서 전해지는 이인의 활약상은 저나 태자 전하도 잘 알고 있는데다 왕후 마마께서도 그 아이를 자랑스러워 하시니 윤허해 주실 듯 하오.”라고 했다.
우선 남편인 태자 안국군과 상의를 했으나 안국군이 다소 주저하는 빛을 보이자 화양부인은 왕후를 배알하고 의견을 구했다. 화양부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왕후는 “이 일은 내가 직접 전하께 아뢸 것이다. 이인 그 아이는 수년간 인질 노릇을 하며 견문을 넓히고 단련을 했으니 최상의 후계자 감이라 생각되는구나.”라고 말하고 바로 소왕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왕후와 화양부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소왕은 즉각 안국군을 불러들여 이인을 후계자로 확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이인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여불위도 입궁하라 한 후 친히 접견하여 천하통일의 방책方策을 물어보았다. 천하경륜天下經綸의 방책을 차분하고 정확하게 진언進言하는 여불위를 본 소왕과 안국군은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그가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라 천하의 형세를 통찰한 일국의 부국강병富國強兵을 책임질 걸출한 인물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즉시 이인의 스승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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