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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当作人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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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8:35 百家爭鳴/一飛衝天

본 글은 제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의 백가쟁명 코너에 게재한 문장입니다.
앞으로 본 사이트 및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백가쟁명 코너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XINGXING-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해당 글 보기 ☞ 
[백가쟁명] 구글과 해하가(垓下歌)

[싱싱차이나의 시사읽기] 구글과 해하가(垓下歌)

 

최근 IT 업계 메인뉴스라면 아이폰-아이패드 더블 콤보를 작렬시킨 애플의 일거수일투족과 애플을 쫓는 추격자들(구글의 넥서스원, 모토로라의 모토로이를 위시한 안드로이드 진영)의 승부와 중국시장에서 검색시장 철수라는 배수의 진을 치며 중국정부의 검색 검열에 반발한 구글의 동향일 것이다.

 

1 29일자 중국 제일재경일보(第一財經日報) "구글, 1월 중국시장 수익 30% 급감. 최악의 경우 구글 차이나 폐쇄 가능"이라는 보도에 따르면 상황이 구글에게 낙관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다. 더 심각한 것은 구글의 중국 시장 철수를 가정에 놓고 중국 현지 업체 등에서 인력 스카우트 물밑 작업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검색시장에서 구글은 단창필마(單槍匹馬)로 당양(當陽) 장판파(長坂坡)에서 조조(曹操)의 진영을 휘젓고 다니던 조자룡(趙子龍)처럼 파죽지세로 그 세를 넓혀왔지만 동북아의 터줏대감들인 한··일 삼국에서는 전혀 맥을 못 추고 있다. ·· 3국 검색시장에서 구글은 각각 30%(중국·일본) 혹은 2%(한국)의 저조한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구글발 허리케인이 동북아 3국의 태풍 앞에서 콧바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은 세계시장 천하통일을 위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시작화면을 바꿨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시장 철수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누구도 예상 못한 한 수이긴 한데 문제는 이 강수가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시장철수 발표로 구글 차이나 내부에는 이미 동요가 발생했고 바이두(百度)를 비롯한 중국 현지업체들이 이 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제국의 황제인 구글의 문화와 경영기법, 검색 노하우를 보유한 고급인력들에 대한 스카우트에 들어간 것이다.

 

수백 년 간 지속된 춘추전국시대를 끝낸 진()나라를 이끈 핵심인물, 상앙(商鞅장의(張儀이사(李斯) 등은 각각 위((, 에서 출생()나라 인물들이다. 그리고 오() 합려(闔閭)를 패자로 만든 오자서(伍子胥)와 손자(孫子) 역시 초()와 제()의 명문가 자제들이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오자병법(吳子兵法)으로 유명한 오기(吳起), 유비(劉備)를 파촉(巴蜀)의 통치자로 만들어준 장송(張松)∙법정(法正) 등도 마찬가지이다.

 

뭐니뭐니해도 인재 스카우트로 재미를 본 이는 400년 한() 제국을 세운 유방(劉邦)이다. 당시 천하 패권 경쟁에서 항우(項羽)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항우 밑에 있던 한신(韓信)이라는 핵심 카드 한 장을 빼옴으로써 한 방 역전에 성공한다.

 

그만큼 핵심인재의 누수는 치명적인 법이다. 이번 선언으로 구글 차이나 내 핵심인력이 빠져 나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글이 보게 될 터이기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시장 철수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음과 동시에 핵심 인적자원마저 놓치는 이중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음이다.

 

"사지에 놓여야 살 수 있다(陷之死地而后生置之亡地而后存)"며 배수진으로 대승을 거둔 한신이 될지, 십면매복(十面埋伏)에 걸려 오강(烏江)에서 회한(懷恨)이 담긴 해하가(垓下歌)를 읊었던 항우가 될지 중국 정부와 구글의 자존심 대결의 결과가 궁금하다.

 

力拔山兮氣蓋世勢不利兮騅不逝

역발산혜기개세, 세불리혜추불서

 

(힘으로 산을 뽑고 패기는 세상을 뒤엎을 만한데

세가 불리하니 오추마가 있어도 어쩔 수가 없구나.)

 

구글버전: 검색 하나로 세계를 두 손에서 좌지우지하건만,

동북아에서는 검색만으로는 어찌 할수 없구나

 

騅不逝兮可奈何虞兮虞兮奈如何

추불서혜가내하, 우혜우혜내여하

 

(오추마가 따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으리.

우희야 우희야 어쩌다 이꼴이 되었을꼬)

 

구글버전: 검색으로 안되면 이 어찌 한단 말이냐.

구글 마니아들이여, 내 어찌 이리 되었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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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부차(姬夫差, ?-BC473, 재위기간:23 BC496-BC473)

춘추시대 말기 오나라 군주. 묘호廟號-오영종吳英宗. 시호溢號-오말왕吳末王


BC496(부차 원년): 즉위

월왕 구천에 패한 합려闔閭 유언에 따라 왕위에 즉위. 태재太宰 백비伯嚭 노장 오자서伍子胥 중용하여 군사력을 강화함.


BC495(부차 2): 월나라 정벌

부초대전(夫椒之戰)에서 대승을 거둔 월나라 도읍(절강성 소흥) 점령함.


BC486(부차 10): 운하개척, 중원진출

한구邗溝 축조해 장강長江 회수淮水 연결하여 이르는 수로를 개척함으로써 중원 지역 진출의 길을 . 이후 애령艾陵(산동山東 태안泰安)에서 제나라를 패퇴시킴.

 

BC482(부차 14): 패자 즉위

황지黃池(하남성河南省 봉구封丘 서남)에서 회맹會盟 열어 패자가 .( 패권을 다퉜으나 마침 진나라에서 내란이 일어나면서 패권을 차지함)

 

BC481(부차 15): 국고탕진

연이은 전쟁으로 오의 국력이 약해지자 월왕 구천勾踐 회계會稽 치욕을 잊지 않고 부국강병을 도모함. 부차가 태자와 약졸만 남긴 정예군을 이끌고 황지로 향하자 침공, 오나라 태자 피살됨. 부차는 급히 군사를 돌려 화친을 .

하지만 장기간의 대외정벌로 국가 전체가 피폐해지면서 양군간 균형이 무너짐.

 

BC473(부차 23): 멸망

월나라의 재침공으로 오나라는 멸망하고 부차는 자결함.

(위 내용은 http://baike.baidu.com/view/390692.htm 의 내용을 해석, 편집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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