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춘추전국시대를 마무리한 진시황(秦始皇)의 제국(帝國)이 15년이 채 되기도 전에 혼란에 빠지면서 우리가 장기판에서 만날 수 있는 초∙한 대전(楚漢大戰)이 전개된다. 5년여에 걸친 대결의 승자는 유방(劉邦)이었지만 훗날 문인(文人)이나 일반 민중들에게 영웅으로 추앙 받은 이는 오히려 항우(項羽)였다.
남송 여류문인 이청조(李清照)도 그런 영웅으로서의 항우를 기리면서 유명한 「하일절구(夏日絕句)」를 후세에 남겼다.
生當作人杰,死當為鬼雄。
살아 생전에는 인중호걸(人中豪杰)이었고 세상 떠나서는 영웅이 되었네.
至今思項羽,不肯過江東。
문득 초패왕(楚霸王)을 생각하니 구차하게 강동(江東)으로 도망가지 않았네.
얼마 전 온 나라를 비통에 잠기게 한 천안함 침몰 사건에서 꽃다운 젊음을 뒤로하고 떠나간 장병들과 위험한 구조작업을 하다가 생을 마감한 한주호 준위를 바라보며 “살아 생전에는 인중호걸이었고 세상 떠나서는 영웅이 되었네(生當作人杰,死當為鬼雄)”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천안함 침몰이라는 비극을 마주한 지금,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백령도 앞바다에 그들을 몰아넣은 분단의 현실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먼저 떠나간 그들은 지금의 분단 현실에 눈물 흘리기보다는 오늘날 대한민국 비극의 근원인 분단을 자초한 국론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더 슬퍼할 것만 같다.
구한 말 친일파∙친청파∙친러파 등으로 갈려 주도권 장악에 눈 멀어 있다가 36년 간의 일제침략을 당하질 않나, 숱한 투사들의 선혈이 뒷받침된 독립을 이루고도 남북으로, 좌∙우 갈려 다투다가 결국 허리가 잘리질 않나. 그러고도 아직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슬퍼할 것이라는 말이다.
쉽지 않겠지만 솔직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국론을 정리하는 것이 백령도를 떠돌고 있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편히 쉬게 해주는 길일 것이다.
남송(南宋)의 문천상(文天祥)은 “살아 생전에 국난을 구하지 못했으니, 죽어 혼령으로나마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生不能救國難,死猶為厲鬼以擊敗)”라며 마지막 기개를 떨쳤었다.
경주 앞바다에서 신라를 지킨 문무왕(文武王)처럼 먼저 떠나간 천안함 장병과 고 한준호 준위의 혼령이 백령도 부근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死猶為厲鬼以擊敗) 호국지령(護國之靈)이 되길 바라며 이청조의 「하일절구」 리메이크 버전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生當作人杰,살아 생전 인걸이었고,
死當為鬼雄。세상 떠나 영웅이었네.
前世之不忘,지난 과실 명심해야만,
后事之師也。반복 실수 피할 수 있네.
至今思魂靈,먼저 떠난 그들을 생각하니,
全民悲哀流。온 국민이 비통한 눈물을 흘리네.
只愿真相白,얼른 진상 밝혀져,
魂靈安歸天。그대 편히 쉬기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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