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生当作人杰
재미있게 익히는 중국어 세상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Notice

生當作人傑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범증'에 해당되는 글 2

  1. 2009/09/26 [역사] 후흑학厚黑學의 고수들(4)
  2. 2009/07/22 用人不疑,疑人不用
2009/09/26 21:10 百家爭鳴/一己之談
그러면서 비유한 인물들이
성군으로 떠받들다 못해 신이 되다시피한 요尧와 순舜이 있고
(차라리 비슷한 시기의 우리의 단군 할배가 훨씬 나을텐데... 신빙성 없는 저들을 떠받든 우리 조상들도 참)
초한楚汉의 영웅들은 항우项羽와 유방刘邦, 그리고 삼국三国영웅들인 조조曹操, 유비刘备, 손권孙权 등이 있다. 아하! 당연 사마의司马懿와 제갈량诸葛亮도 있다.

이종오李宗吾(이하 이종오)는 후흑학의 최고 경지에 이른 인물로 요와 순을 꼽고 있다.

厚而无形,黑而无色。无声无嗅,无形无色。
두꺼우나 형태가 없고 검으나 색이 없으니. 무색무취, 무형무색이로세.

이 정도에 이를진대 어찌 범인이 그들의 상판이 두꺼운지 속이 시꺼먼지 알 수 있으리오.

천하를 자신의 아들이 아닌 타인에게 넘겨주는 도량, 하지만 백양柏杨 선생이 하는 말에 따르면 유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그런 아름다운 선양은 없고 치수를 잘한 순과 우禹가 그 세력을 기반으로 요와 순을 압박해 섭정을 하면서 정권을 이양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어차피 신화시대이니 사실 여부를 가릴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유학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분석하면 요와 순은 말 그대로 후흑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후흑의 성인!!! 흠!!
여하튼 이건 이종오 선생의 이야기이고 본인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히며...

진정한 후흑의 달인은 유방과 조조, 유비, 손권, 사마의이다.

항우와 범증은 상대를 잘못 만났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유방의 얼굴 두께는 생명을 부지하고자 자신의 처자식을 두번이나 마차에서 밀어 떨어뜨린 장면에서 이미 맛보기하고
항우가 자신의 부친을 잡아 항복을 종용하며 항복 않을 시에는 삶아 죽이겠다고 하자 다 삶거든 자신에게도 그 국을 달라는 말로 인증샷 팍 날려버린다.

속이 시커멓기로는
한신과 팽월 등등 공신 숙청 작업에서 High 칼라의 검정 먹물을 들이키는 지독함을 보면 알수 있다.

이런 유방 앞에서 항우는 힘만 무식하게 센 너무나 순진한 하룻강아지였다.


그래서일까
项羽愿与刘邦单打独斗,一决雌雄,刘邦笑谢曰:“吾宁斗智,不能斗力。”
(해석)항우는 유방과 일기토로 승부...쇼부를 보려고 하자 유방이 실 쪼개면서 "무식하게 힘 쓰지말고 대가리를 좀 굴려라. x댕아"
(유방은 당시 지역 流氓 깡패나 다름없었으니까 조금 분위기 살리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 보여짐. 고상하게 "유방이 가볍게 미소를 띄우며 거절하고는 난 힘이 아닌 지혜로 싸우고자 하네" 라고 했을리는 절대 없다 여겨짐..ㅋㅋㅋ)


결국 항우는 오강乌江에서 조각배에 몸을 싣고 강동으로 돌아가 권토중래卷土重来를 도모하지 않고
아녀자처럼 800전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결을 택한다.
하긴 그 많은 식구가 딸린 기업체가 도산 직전이니 비장한 최후의 선택을 하려 한 점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나 강동으로 돌아가면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유방이 추격해 완전 소탕하기 힘들었고 이후 유방의 천하가 안정되기까지 상당기간 소요되었음을 비춰봤을 때 결코 영웅의 선택은 아니었다 보여진다.

어쨌든 유방의 철면피공(鐵面皮功)에 숫검댕이 속 때문에 항우는 천하패권의 문턱에서 아웃된다.

하지만 어찌 항우 뿐이겠는가?

항우 밑에서 나름 후흑의 일가를 이뤘다고 여기며 항우의 천하제패 초석을 다져주고자 했던 범증范曾과 건달들 가랑이 밑을 기는 굴욕(胯下之辱)을 참은 한신韩信 역시 유방의 철면신공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홍문연鸿门宴에서 유방의 눈물을 동반한 철면신공에 한번 무릎 꿇으면서 천추의 한을 품고 사망..지못미

떠돌이 장수가 될 뻔한 방랑검객 한신은 소하萧何의 꼬드김(萧何月下追韩信) 퇴패검법(退霸剑法)에 넘어가 당시 자칭. 타칭 서초패왕西楚霸王으로 본좌에 등극해 있던 항우를 김택용에 3.3 혁명 제대로 함 당하고 마레기 취급받는 나의 스타본좌 마재윤처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카운터펀치를 날리지만 뒤에서 음흉한 속을 인자한 얼굴에 감춘 후흑의 절정고수 유방의 토사구팽(兔死狗烹) 초식에 난도질 당해 차세대 본좌 포스를 뽐내던 제왕齐王에서 보통 검객 초왕楚王으로 급전직하, 결국에는 서지수에 확인사살 당한 홍진호처럼 여태후吕后에게 확실히 제거됨. 물론 진평陈平의 도움이 컸지만.

이종오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평이야말로 진말한초秦末汉初 후흑의 절세고수가 아닌가 한다.
한나라 공자 출신世家出身의 장자방 장량张良/子房도 천리 밖의 승부를 좌지우지하는(运筹于帷幄之中,决胜于千里之外) 무림고수이지만 출신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혼탁한 정치판에서 자신이 때묻는게 싫어 발을 빼고 신선놀음을 하는, 어떻게 보면 난세에는 영웅일지나 태평성대에 필요한 줄타기를 못하는 정치 초단의 풋내기일 수 있다.

반면
신분에 대한 비웃음을 견뎌야 할 만큼 진평은 시작부터 진흙탕에서 몸을 뒹굴며 자라났고 결정적인 순간에 유방이 자신의 철면피공의 유일한 약점, 조문이 드러나며 욱할 때마다 뒤에서 그것을 알아채고 지긋이 내공 운기시켜주며 진정시켜 항우와 한신, 당대 본좌와 차세대 본좌를 한 번에 숙청할 수 있도록 도와준데서 이미 그가 후흑의 달인임이 드러나고, 천하 대권을 잡은 후 아군끼리 도륙을 내는 혈투 중에도 발을 빼지 않고 관망과 처세의 비전을 가동함과 동시에 후흑진경의 진수精髓,真谛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승상의 위치에 오른다.
당시 천하에서 그만큼 처세를 잘한 이는 찾기 드물지니 어찌 세외에 숨어있던 후흑의 절세고수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

여하튼

조조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삼국연의三国演义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만 보면 완전 후흑의 달인도 이런 달인이 없다. 역대 최강이라 할 만 하다.
여백사吕伯奢일가를 도륙하고는 조조가 진궁陈宫에게 한 말은 유명하다.

“宁教我负天下人,休教天下人负我”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날 저버릴 수는 없다)

예형을 황조에게 보낼 때도, 계륵鸡肋으로 유명한 양수杨修를 처단할 때도,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문재文才를 떨치고 효성孔融让梨으로 유명한 공융孔融 일가를 박살낼 때 등등 그가 후흑신공을 시전한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그의 후흑신공은 다른 사람에게 살짝 살짝 발각이 된다는 점. 아마 그가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신공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웃는다고 웃는 게 아냐!!! 뭐 이런 무언의 압박, 무언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했던 것이 아닐까?

조조가 역대 최강이라면 아마 유비는 역대 최고가 아닌가 한다. 조조의 후흑신공 포스는 누구도 따를 수 없지만 유비의 후흑신공 커리어는 조조도 따르기 힘들지 싶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刘备的江山,是哭出来的。”
(천하 얻기, 유비 따라 그저 울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그는 관우关羽, 장비张飞를 얻어 천하를 도모할 때 눈물로 자신의 심성을 포장하여 순진하지만 용력은 초인적인 관우, 장비를 자신의 수하로 붙박아 놨으며, 도겸陶谦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서주徐州를 얻었고 여포吕布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원술袁术의 압박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았고, 유표刘表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비육지탄 원맨쇼를 하면서 형주荆州 획득의 초석을 다지고, 제갈량诸葛亮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우국충정尽忠报国의 맹세를 보임으로써 삼고초려三顾茅庐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고 조조의 오천 철기의 추격 속에서도 백성을 놓지 않으며 함께 피난을 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치밀함 끝에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뭐니뭐니 해도 백미는 백제성白帝城에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두손 들만한 Tears to the Heaven을 열창하며 유선刘禅의 승계작업을 마무리 한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 헐후어 중에 다음과 말이 있다.

"刘备摔孩子-收买人心"

(유비가 자식 던진 건 쇼였네. 그저 사람 마음을 얻고자 했음이니)

신야성新野城 전투 후 강하江夏로 피난하다가 두 부인과 아두阿斗(유선의 아명)를 잃었을 때 조운赵云이 일기당천一骑当千의 용맹으로 아두를 데려오자 유비는 자식을 땅바닥에 던지며 "야 이 자슥아, 니 땜시로 조장군 X 될 뻔 했잖아!"라고 했다는데 중국 민간의 헐후어조차 유비의 가공할 후흑신공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손
권孙权은 다소 처지는 하수이다. 준본좌급도 안된다고 할까? 그는 유비, 조조가 다 살아 있을 적에는 찌그러져 있다가 그들이 다 Go to the heaven 하고 나서 신공을 맘껏 펼친다.
스타계에서는 마재윤 몰락 후 화려한 쇼맨쉽 세러모니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성은 정도, 그리고 동방불패东方不败의 규화보전葵花宝典이 실전失传하고 나서 오악검파五岳剑派의 맹주가 된 악불군岳不群이나 임평지林平之 정도.

주로 대외에 철면피공을 발휘하기보다는 내부 집단속에 많이 사용한다. 그는 후계자 선정 작업立储之争에서 신하들간 파벌 싸움이 심해지자 중간에서 철면피공으로 조율을 하였다.

이들에 반해 제갈량诸葛亮은 생각보다 꽉 막힌 서생이라 그런지 후흑신공에 심히 둔감했다. 물론 연의에서는 주유周瑜를 홧병으로 죽이고 조문가서 쇼하는 장면이나 맹획孟获을 잡고 보여준 칠종칠금七纵七擒의 모습, 적벽대전赤壁大战을 일으키기 위해 동오东吴의 대신들과 설전诸葛亮舌战群儒을 벌이는 모습, 가정街亭 대패 후 서성西城에서 보여준 공성계空城计 등이 있으나 실제와 다르니 언급의 필요가 없고 삼국지三国志에 따르면 진수陈寿가 평가한 대로 제갈량은 평생 법가法家 사상을 따르며 신중하게 살아와서인지诸葛一生唯谨慎 후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반면 그의 맞수인 사마의司马懿는 당시 절정을 넘기고 있던 조조 앞에서도 그 야망을 숨겼고 나중에 조상曹爽 앞에서도 그 본심은 숨긴 채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일거에 위魏나라 조정을 움켜쥐는 후흑 신공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종오는 후흑이야말로 성공한 정치인이 갖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평가했음이니...

오늘날 우리나라 돔구장 의원들도 모두 후흑의 달인인가? 아님 막싸움의 달인인가? ㅎㅎㅎ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7/22 23:57 百家爭鳴/一己之談
요즘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집에 TV가 없지만 항상 다시보기 등을 통해서 꼭 챙겨보고 있다.
내가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인데 그만큼 아드레날린 분비에도 일조를 해주는 긴장감까지 매회 항상 조성되니 너무 좋다~^^
특히 이번 주 덕만의 출생비밀 등이 조금씩 밝혀지는 과정에서는 열대야 속에서도 몸에 갑자기 나도 모를 한기가 확 끼치는 아찔함들이 엄습을 할 정도였다.
다음주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능....

그나저나 이번 18회에서 천명이 유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넌 믿었던 사람을 의심해 본 적이 있느냐?"
그러자 유신은
"이 유신, 의심가는 자를 믿었던 적 없으며 믿었던 자를 의심해 본적 없습니다."


(위 사진은 MBC 선덕여왕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화면을 캡처해 올린 것임. MBC측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 바로 삭제하겠음)

이 대사를 듣자마자 스치는 중국어, “疑人不用,用人不疑”.

중국에서 인재를 등용하고 부릴때 가장 많이 내세우는 원칙 중 하나이다.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수시로 접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참 마음에 드는 구절이기도 하다.
물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니...

과연 의심가는 자는 아예 부리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기 시작하였다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미실이라는 노련한 정치9단을 맞아 어린 천명은 이미 이 가치관의 혼란에 직면했고 비슷한 또래라 설정된 김유신은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한다. 물론 그도 이미 그전에 덕만이를 의심했었기에 자기 자신도 극복하지 못했음을 살짝 인정했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이 원칙에 걸맞는 인물을 들먹일 때 가장 자주 거론하는 이가 바로 위무제 조조(魏武帝 曹操)이다. 그는 스스로도 수시로 이 원칙을 들먹였고 여러 차례 강조를 했었다.
"山不厭高,海不厭深。周公吐哺,天下歸心。“이라든지 "明揚仄陋,唯才是舉“라는 말은 천하가 혼란스러운 당시 상황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능력에 기반한 인재등용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었다.

선덕여왕 속 미실 역시 진흥대제의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사람을 모아야 하고 사람을 모은 자가 서라벌을 지배한다"는 통치관에 절대 기반해 피아를 구분않고 사람을 모아 결국 엄청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위무제 조조가 자신의 사람을 등용하고 믿음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자주 거론하는 이야기가 바로 원소와의 일전을 끝내고 나서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당시 하북(河北)지역의 절대 세력을 구축하고 기주冀州, 청주青州,병주并州,유주幽州라는 핵심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던 원소袁紹예주豫州,연주兗州, 서주徐州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조조의 싸움은 말그대로 以卵擊石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절대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점타격을 노려 소수의 경기병으로 군량을 불태우면서 A.D.200년의 관도전투官渡之戰에서 카운트펀치를 날려 대역전승을 거두어 버린다.
이후 원소 통치지역을 점령한 조조는 원소 군영에서 조조의 부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흔적으로 보이는 문건들이 수북히 쌓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조조는 그것을 절대 보지 말고 그대로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삼국연의三國演義 속 조조가 비열하고 교활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위의 모습 하나만 보더라도 일단 그는 수하에 충복을 둘 수 밖에 없는 카리스마 있고 매력적인 리더임은 분명하다. 여하튼 이 이야기가 바로 用人不疑,疑人不用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사 중 하나이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수하를 믿고 일을 맡기지만 관도대전 7년 후에 벌어진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결국 패전의 멍에를 쓰게 된다.
(위 사진은 http://ent.sina.com.cn/d/2009-01-04/10152326889.shtml 에서 퍼옴.)

바로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의 죽음이다. 주유周瑜반간계反間計에 걸려 죽는 것으로 삼국연의에서는 처리되고 있는데 물론 정사와는 거리가 있다. 어쨌든 삼국연의에 따르면 조조는 이 실수 하나로 크게 패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用人不疑,疑人不用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 용인술用人之道이었다. 만약 이것이 조조를 깎아 내리려 한 나관중羅貫中의 의도였다면 그는 애초에 조조의 용인술 자체를 제대로 몰랐음에 틀림이 없는 것일 것이다. 이외에 조조가 기용한 인물을 의심하는 경우는 따로 나오지 않으니까...(양수楊修나 예형
禮衡의 죽음은 글쎄...일반적 용인술과는 관계가 없고 조조 개인적 지적 프라이드의 대결 문제라좀 다른 감이 있음)

조조 외에 자주 거론되는 중국의 영웅이 바로 초한대전楚漢大戰의 두 주인공 항우項羽유방劉邦이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연회를 열었을 때 신하들이 "폐하, 구주九州가 하나가 되고 만백성이 평안해 진 것은 모두 폐하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옵니다."라고 하자 유방은 "내 계책을 부리는 것은 장량만 못하고 내정을 다스리는 것은 소하만 못하고 군사를 이끌고 전투를 치르는 것은 한신만 못하도다. 寡人出谋划策不如张良,整顿内政不如萧何,带兵打仗也不如韩信 과인이 항우보다 나은 점이라면 바로 이들을 하나로 융합시키고 그들을 믿었던 것 밖에 없느니라. 孤胜于项羽之处只有一个,就是疑人不用,用人不疑。寡人与张良、萧何、韩信情同手足,完全相信他们。但项羽不相信范曾、英布等手下。

유방 역시 나중에 한신을 의심하고 기타 여러 공신을 의심하지만 여하튼 천하 통일의 과정에서 보여준 용인술은 가히 황제의 자격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선덕여왕 18회를 보면서 참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조조, 유방, 그리고 나...나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