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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当作人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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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6 [선덕여왕] 피눈물의 칼부림, 덕만 피를 튀기다(5)
  2. 2009/09/26 [역사] 후흑학厚黑學의 고수들(4)
2009/10/06 20:22 百家爭鳴/一己之談

다들 추석 잘 보내셨는지요?^^

고향집에 컴퓨터가 없는 관계로 여태껏 접속 한 번 못하다가 오늘에야 접속을 했습니다. 
그동안 포스팅도 한 번 못하고 마음씨 따뜻한 여러 이웃분들께 인사 한번 못해서 참으로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오늘 포스팅부터 얼른 하고 이웃분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추석 전에 글씨체 바꿀려고 깔짝거리다가 할게 많아서 그냥 마무리 짓지도 못했네요. 아무래도 늘어질듯~귀차니즘이 발동해서리~헐^^;;
이번 주 중으로 글자체도 바꾸고 블로그 카테고리며 포스팅 방향을 조금 조정해서 잡아봐야겠습니다. 좀더 생산적인 블로그가 되야겠기에~^^

일단 선덕여왕 39화 들어갑니당^^ (39화 내용에서 필~이 퐉퐉 와 닿는 장면이 적은 관계로 금방 마무리 지을 수 있을 듯 하네요~)

덕만댁과 미실댁의 곡물가격 경제정책 라운드는 덕만댁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 같네요. 고스트 바둑왕 사이가 말하는 신의 한수처럼 허를 찌르는 군량미 대량 바겐세일 공격을 맞고 미실댁이 핀치에 몰리게 됩니다. 미실은 덕만의 이 신의 한수에 일격을 맞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실외 4명의 그 4명에게 "젊은 시절 진흥제나 천명공주와는 참으로 다릅니다. 쓰는 수가 얄팍하긴 하나 4차원 캐릭에서 나오는 수라 그런지 당황하게 하는데가 있어요."라고 덕만을 인정해주죠. 마치 도야 아키라가 사이의 지도를 받은 히카루에게 일격을 맞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멍때리며 히카루를 인정해 주듯 말이죠.

攻其無備,出其不意。《孫子》
예상치 못한 뜻밖의 타격을 가하라.

제가 자주 인용하는 손자병법의 구절이죠^^ 이젠 다 기억하실 듯~(저만의 착각인가요?)


그리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덕만과 단독 회담을 가집니다. 말발로, 그리고 눈썹 치켜뜨기로 덕만의 기를 확~ 눌러놔야겠다 생각이 되었나 봅니다. 역시나 호탕하면서도 간들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태껏 패배를 모르던 엄청난 말발로 속사포처럼 덕만을 공격하죠. "어쩌려고 이러세요? 매번 곡물가격 조절을 위해 군량미 푸실 건가요?  귀족을 전부 등지고 정치를 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하긴 당시 화백 회의라는 의사결정기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판에서 덕만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과 세력 유지의 틀이 되는 매점매석을 아작내는 특효약을 가져나왔으니 정책결정이 제대로 될리도 없고 황실(당시 신라가 황권을 가졌다는 기록은 찾기 어려운 시점에 드라마에서 일단 황권으로 묘사했으므로 그냥 황권 관련 용어로 표현합니다^^;; 당시 신라는 왕권이 확립된지도 얼마되지 않은, 연맹국가의 틀을 갓 벗어난 중앙집권의 틀을 마련 중인 왕권 국가였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죠?^^;;)의 정책 추진도 태클을 얻어 맞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皮之不存,毛將焉附。《左傳》
살껍질이 없으면 터럭은 어디 붙어나 있겠냐? 생존의 기본이 없는데 어찌 살아갈 수 있으리?

골품 귀족들은 자신들이 살껍질이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황실을 터럭이라 생각했겠죠. 몸에 덜렁덜렁 붙어있는 Hair~로 말이죠. 하지만 국가 정치에서의 실질적 살껍질은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덕만과 미실의 백성에 대한 접근법, 아니 드라마 속 덕만과 미실외 기타 모든 인물들의 백성에 대한 접근법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죠.

미실의 말에 덕만은 "이렇게 엉뚱한 공주가 있기 때문에 귀족들이 함부로 깐죽거리지 못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하며 원펀치를 날린 다음 연이어 "그간 궁금했던게 있습니다. 미실새주님은 통찰력이나 결단력, 추진력 어느 것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無所不精 그런데 말이죠, 어찌 신라는 진흥제 이후 발전이 되지 않고 정체만 하는 겁니까? 뛰어난 지도자가 있으면 발전이 있어야 하는게 아닙니까?"라며 2단 콤보공격을 들어갑니다. 미실은 처음에 슬쩍 띄워주는 덕만의 발언에 '어쭈? 요것이 그래도 날 인정은 하는구나' 하며 비행기 탔다가 기분 확 잡쳤을 겁니다.

이 장면을 보다보니 문득 중고교 시절 봤던 추억의 쿵후만화, 쿵후소년 용소야에 잠깐 나왔던 격산타우隔山打牛의 공격이 생각나네요. 격산타우는 직접 타격을 가하는 부위보다 한층 더 깊은 부분에 더 강한 피해를 입히는 공격입니다. 
(학창시절 해적판으로 볼때만 해도 용소야가 우리나라 만화인 줄 알았고 지금까지 그랬는데 이번에 이미지 검색하면서 비로소 이 용소야가 일본넘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 마징가가 우리나라 만화인 줄 알았던 것처럼 말이져...)

덕만이 미실을 놀리는 것을 들은 유신은 너무 놀리는 것 아니냐며 걱정을 합니다만 덕만은 "미실처럼 뛰어난 지도자가 다스리는데 신라가 왜 발전을 하지 못한건지 정말 알고 싶어 그랬어요. 그래야 저도 우를 법하지 않으니까요"라며 진지하게 나가죠.

前車之覆,后車之鑒。《晉書》
앞선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다.

후계자 자율학습을 척척해내는 덕만이가 기특해 보이네요.

하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 미실의 위세를 등에 업은 狐假虎威 하종의 반발이 가장 거셉니다. 결국 안강성의 민란을 유발하죠. 이에 덕만은 직접 해당 지역으로 내려가 민심 다스리기에 나섭니다. 덕만은 민란을 일으킨 촌장 등 우두머리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유신과 알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곡물 매수 매도 놀이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생산한 A급 강재 농기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세금으로 낸 곡물도 되돌려 주는 위무책을 사용하면서 황무지 개간을 독려합니다. 그리고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며 으쓱해서 서라벌로 돌아오죠.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백성들의 도주였습니다. 당황해 하는 덕만에게 미소띈 얼굴의 미실이 일장 훈계를 늘어 놓기 시작합니다.

"진실과 희망과 소통으로 백성을 다스린다고요? 백성은 진실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희망은 버거워하고요.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고 단호하게 포상은 가볍고 천천히 그것이 지배의 기본입니다." 와우~ 청산유수가 따로 없네요. 그리고 봉건시대 통치법을 이보다 완벽하고 간략하게 솰라솰라 쏟아내는 인물도 드물 겁니다.
백성이든 국민이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진실은 부담스러워 하죠.^^;; 그게 사람인듯 하구요. 버거워 하는 희망은 일전에 미실이 덕만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희망을 가장한 환상이기에 버거워하는 것이겠죠. 위정자의 손에서 재가공되는 희망이니까요. 망설여 지는 자유 역시 진실과 마찬가지라 보여지는데요.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르니까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더욱 부담스럽고 버거워하고 망설여지겠지요.

적절한 우민정치愚民政治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혼합해 구사해야 한다는 미실의 말에 덕만이도 순간 말문이 턱 막힙니다. 하지만 일국의 공주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가 보네요. "이제서야 왜 진흥제 시절 이후 신라가 발전이 없었는지 알겠네요. 바로 비스마르크식 철혈정치를 펼치는 미실 새주님 때문이네요. 새주님은 공포로만 다스리려고 합니다. 신라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죠. 전 다릅니다. 전 성골이니까요~~ㅋㅋㅋ"

苛政猛于虎。《禮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미실의 속을 확 긁어놓은 후 덕만은 다시 현장으로 내려가 유신이 다시 잡아놓은 촌장 이하 백성들을 심문(?) 합니다. 땅을 나눠주고 개간시켜 자립갱생의 기회를 준다고 해도 그저 목숨만 살려주고 먹을 것만 달라는 백성들을 다잡기 위해, 그 규율을 확고히 하기 위해 덕만은 피눈물을 흘리며 촌장과 직속 보좌관을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죠. "반드시 너희들을 자력갱생 하도록 하겠다."

황실의 정책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고 규율을 잡기 위해 백성을 제손으로 벤 덕만의 심정. 아마 가정街亭전투에서 사마의司馬懿(정사正史 속에서는 장합張合)에게 대패한 후 자신이 아껴마지 않던 마속馬謖을 벤 제갈량의 심정이 저랬을겁니다. (물론 제갈량은 자신의 인사정책의 실수를 애꿎은 마속을 베는 걸로 노련하게 넘어간 거지만요^^) 규율을 잡는 다는 점에서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오吳나라 합려闔閭의 궁녀들을 훈련시키다 군기를 잡기 위해 합려가 총애하던 궁녀 둘을 벤 손무孫武, 즉 손자孫子를 떠올리게 하네요.

위정자의 역할이란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덕만을 보면서 드네요. 여러분도 그러신지?^^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이 저를 힘나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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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26 21:10 百家爭鳴/一己之談
그러면서 비유한 인물들이
성군으로 떠받들다 못해 신이 되다시피한 요尧와 순舜이 있고
(차라리 비슷한 시기의 우리의 단군 할배가 훨씬 나을텐데... 신빙성 없는 저들을 떠받든 우리 조상들도 참)
초한楚汉의 영웅들은 항우项羽와 유방刘邦, 그리고 삼국三国영웅들인 조조曹操, 유비刘备, 손권孙权 등이 있다. 아하! 당연 사마의司马懿와 제갈량诸葛亮도 있다.

이종오李宗吾(이하 이종오)는 후흑학의 최고 경지에 이른 인물로 요와 순을 꼽고 있다.

厚而无形,黑而无色。无声无嗅,无形无色。
두꺼우나 형태가 없고 검으나 색이 없으니. 무색무취, 무형무색이로세.

이 정도에 이를진대 어찌 범인이 그들의 상판이 두꺼운지 속이 시꺼먼지 알 수 있으리오.

천하를 자신의 아들이 아닌 타인에게 넘겨주는 도량, 하지만 백양柏杨 선생이 하는 말에 따르면 유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그런 아름다운 선양은 없고 치수를 잘한 순과 우禹가 그 세력을 기반으로 요와 순을 압박해 섭정을 하면서 정권을 이양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어차피 신화시대이니 사실 여부를 가릴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유학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분석하면 요와 순은 말 그대로 후흑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후흑의 성인!!! 흠!!
여하튼 이건 이종오 선생의 이야기이고 본인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히며...

진정한 후흑의 달인은 유방과 조조, 유비, 손권, 사마의이다.

항우와 범증은 상대를 잘못 만났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유방의 얼굴 두께는 생명을 부지하고자 자신의 처자식을 두번이나 마차에서 밀어 떨어뜨린 장면에서 이미 맛보기하고
항우가 자신의 부친을 잡아 항복을 종용하며 항복 않을 시에는 삶아 죽이겠다고 하자 다 삶거든 자신에게도 그 국을 달라는 말로 인증샷 팍 날려버린다.

속이 시커멓기로는
한신과 팽월 등등 공신 숙청 작업에서 High 칼라의 검정 먹물을 들이키는 지독함을 보면 알수 있다.

이런 유방 앞에서 항우는 힘만 무식하게 센 너무나 순진한 하룻강아지였다.


그래서일까
项羽愿与刘邦单打独斗,一决雌雄,刘邦笑谢曰:“吾宁斗智,不能斗力。”
(해석)항우는 유방과 일기토로 승부...쇼부를 보려고 하자 유방이 실 쪼개면서 "무식하게 힘 쓰지말고 대가리를 좀 굴려라. x댕아"
(유방은 당시 지역 流氓 깡패나 다름없었으니까 조금 분위기 살리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 보여짐. 고상하게 "유방이 가볍게 미소를 띄우며 거절하고는 난 힘이 아닌 지혜로 싸우고자 하네" 라고 했을리는 절대 없다 여겨짐..ㅋㅋㅋ)


결국 항우는 오강乌江에서 조각배에 몸을 싣고 강동으로 돌아가 권토중래卷土重来를 도모하지 않고
아녀자처럼 800전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결을 택한다.
하긴 그 많은 식구가 딸린 기업체가 도산 직전이니 비장한 최후의 선택을 하려 한 점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나 강동으로 돌아가면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유방이 추격해 완전 소탕하기 힘들었고 이후 유방의 천하가 안정되기까지 상당기간 소요되었음을 비춰봤을 때 결코 영웅의 선택은 아니었다 보여진다.

어쨌든 유방의 철면피공(鐵面皮功)에 숫검댕이 속 때문에 항우는 천하패권의 문턱에서 아웃된다.

하지만 어찌 항우 뿐이겠는가?

항우 밑에서 나름 후흑의 일가를 이뤘다고 여기며 항우의 천하제패 초석을 다져주고자 했던 범증范曾과 건달들 가랑이 밑을 기는 굴욕(胯下之辱)을 참은 한신韩信 역시 유방의 철면신공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홍문연鸿门宴에서 유방의 눈물을 동반한 철면신공에 한번 무릎 꿇으면서 천추의 한을 품고 사망..지못미

떠돌이 장수가 될 뻔한 방랑검객 한신은 소하萧何의 꼬드김(萧何月下追韩信) 퇴패검법(退霸剑法)에 넘어가 당시 자칭. 타칭 서초패왕西楚霸王으로 본좌에 등극해 있던 항우를 김택용에 3.3 혁명 제대로 함 당하고 마레기 취급받는 나의 스타본좌 마재윤처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카운터펀치를 날리지만 뒤에서 음흉한 속을 인자한 얼굴에 감춘 후흑의 절정고수 유방의 토사구팽(兔死狗烹) 초식에 난도질 당해 차세대 본좌 포스를 뽐내던 제왕齐王에서 보통 검객 초왕楚王으로 급전직하, 결국에는 서지수에 확인사살 당한 홍진호처럼 여태후吕后에게 확실히 제거됨. 물론 진평陈平의 도움이 컸지만.

이종오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평이야말로 진말한초秦末汉初 후흑의 절세고수가 아닌가 한다.
한나라 공자 출신世家出身의 장자방 장량张良/子房도 천리 밖의 승부를 좌지우지하는(运筹于帷幄之中,决胜于千里之外) 무림고수이지만 출신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혼탁한 정치판에서 자신이 때묻는게 싫어 발을 빼고 신선놀음을 하는, 어떻게 보면 난세에는 영웅일지나 태평성대에 필요한 줄타기를 못하는 정치 초단의 풋내기일 수 있다.

반면
신분에 대한 비웃음을 견뎌야 할 만큼 진평은 시작부터 진흙탕에서 몸을 뒹굴며 자라났고 결정적인 순간에 유방이 자신의 철면피공의 유일한 약점, 조문이 드러나며 욱할 때마다 뒤에서 그것을 알아채고 지긋이 내공 운기시켜주며 진정시켜 항우와 한신, 당대 본좌와 차세대 본좌를 한 번에 숙청할 수 있도록 도와준데서 이미 그가 후흑의 달인임이 드러나고, 천하 대권을 잡은 후 아군끼리 도륙을 내는 혈투 중에도 발을 빼지 않고 관망과 처세의 비전을 가동함과 동시에 후흑진경의 진수精髓,真谛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승상의 위치에 오른다.
당시 천하에서 그만큼 처세를 잘한 이는 찾기 드물지니 어찌 세외에 숨어있던 후흑의 절세고수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

여하튼

조조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삼국연의三国演义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만 보면 완전 후흑의 달인도 이런 달인이 없다. 역대 최강이라 할 만 하다.
여백사吕伯奢일가를 도륙하고는 조조가 진궁陈宫에게 한 말은 유명하다.

“宁教我负天下人,休教天下人负我”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날 저버릴 수는 없다)

예형을 황조에게 보낼 때도, 계륵鸡肋으로 유명한 양수杨修를 처단할 때도,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문재文才를 떨치고 효성孔融让梨으로 유명한 공융孔融 일가를 박살낼 때 등등 그가 후흑신공을 시전한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그의 후흑신공은 다른 사람에게 살짝 살짝 발각이 된다는 점. 아마 그가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신공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웃는다고 웃는 게 아냐!!! 뭐 이런 무언의 압박, 무언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했던 것이 아닐까?

조조가 역대 최강이라면 아마 유비는 역대 최고가 아닌가 한다. 조조의 후흑신공 포스는 누구도 따를 수 없지만 유비의 후흑신공 커리어는 조조도 따르기 힘들지 싶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刘备的江山,是哭出来的。”
(천하 얻기, 유비 따라 그저 울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그는 관우关羽, 장비张飞를 얻어 천하를 도모할 때 눈물로 자신의 심성을 포장하여 순진하지만 용력은 초인적인 관우, 장비를 자신의 수하로 붙박아 놨으며, 도겸陶谦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서주徐州를 얻었고 여포吕布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원술袁术의 압박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았고, 유표刘表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비육지탄 원맨쇼를 하면서 형주荆州 획득의 초석을 다지고, 제갈량诸葛亮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우국충정尽忠报国의 맹세를 보임으로써 삼고초려三顾茅庐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고 조조의 오천 철기의 추격 속에서도 백성을 놓지 않으며 함께 피난을 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치밀함 끝에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뭐니뭐니 해도 백미는 백제성白帝城에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두손 들만한 Tears to the Heaven을 열창하며 유선刘禅의 승계작업을 마무리 한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 헐후어 중에 다음과 말이 있다.

"刘备摔孩子-收买人心"

(유비가 자식 던진 건 쇼였네. 그저 사람 마음을 얻고자 했음이니)

신야성新野城 전투 후 강하江夏로 피난하다가 두 부인과 아두阿斗(유선의 아명)를 잃었을 때 조운赵云이 일기당천一骑当千의 용맹으로 아두를 데려오자 유비는 자식을 땅바닥에 던지며 "야 이 자슥아, 니 땜시로 조장군 X 될 뻔 했잖아!"라고 했다는데 중국 민간의 헐후어조차 유비의 가공할 후흑신공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손
권孙权은 다소 처지는 하수이다. 준본좌급도 안된다고 할까? 그는 유비, 조조가 다 살아 있을 적에는 찌그러져 있다가 그들이 다 Go to the heaven 하고 나서 신공을 맘껏 펼친다.
스타계에서는 마재윤 몰락 후 화려한 쇼맨쉽 세러모니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성은 정도, 그리고 동방불패东方不败의 규화보전葵花宝典이 실전失传하고 나서 오악검파五岳剑派의 맹주가 된 악불군岳不群이나 임평지林平之 정도.

주로 대외에 철면피공을 발휘하기보다는 내부 집단속에 많이 사용한다. 그는 후계자 선정 작업立储之争에서 신하들간 파벌 싸움이 심해지자 중간에서 철면피공으로 조율을 하였다.

이들에 반해 제갈량诸葛亮은 생각보다 꽉 막힌 서생이라 그런지 후흑신공에 심히 둔감했다. 물론 연의에서는 주유周瑜를 홧병으로 죽이고 조문가서 쇼하는 장면이나 맹획孟获을 잡고 보여준 칠종칠금七纵七擒의 모습, 적벽대전赤壁大战을 일으키기 위해 동오东吴의 대신들과 설전诸葛亮舌战群儒을 벌이는 모습, 가정街亭 대패 후 서성西城에서 보여준 공성계空城计 등이 있으나 실제와 다르니 언급의 필요가 없고 삼국지三国志에 따르면 진수陈寿가 평가한 대로 제갈량은 평생 법가法家 사상을 따르며 신중하게 살아와서인지诸葛一生唯谨慎 후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반면 그의 맞수인 사마의司马懿는 당시 절정을 넘기고 있던 조조 앞에서도 그 야망을 숨겼고 나중에 조상曹爽 앞에서도 그 본심은 숨긴 채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일거에 위魏나라 조정을 움켜쥐는 후흑 신공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종오는 후흑이야말로 성공한 정치인이 갖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평가했음이니...

오늘날 우리나라 돔구장 의원들도 모두 후흑의 달인인가? 아님 막싸움의 달인인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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