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성전자 부사장의 자살과 문천상, 사마천

시사 2010/02/01 16:59
본 글은 제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의 백가쟁명 코너에 게재한 문장입니다.
앞으로 본 사이트 및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백가쟁명 코너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XING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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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하병준] 삼성전자 부사장의 자살과 문천상 그리고 사마천



얼마 전인 1월 26일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내 넘버원 기업 삼성전자 부사장 A씨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살 사유로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업무 과중과 고속 승진 질주 속에 걸린 갑작스런 브레이크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는 것이 현재 조사 결과이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중국의 두 선인(先人)이 있었으니 바로 남송南宋 말기의 충신 문천상文天祥과 사성史聖으로 추앙받는 사마천司馬遷이 그들이다.

문천상은 바로 원元나라 쿠빌라이칸의 공격이 막바지이던 남송 말기 재상으로 당시 남송은 방어의 핵심이던 양양성襄陽城(현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이 함락당하고 도읍인 임안성臨安城(현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마저 함락되기 직전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여있었다. 1278년 남송은 애산崖山으로 천도를 하고 문천상은 조주潮州에서 몽고군 저지작전을 펼쳤으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인 1279년 남송은 멸망하는데 문천상은 ‘과영정양過零丁洋’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충심을 역사에 남긴다. 

辛苦遭逢起一經,(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디뎠네),
干戈寥落四周星.(전란 속에 어느덧 4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구나)
山河破碎風飄絮,(이 강산 오랑캐에 처참히 짓밟히니),
身世浮沉雨打萍.(내 힘을 다 쏟아 부어도 국면을 전환시킬 수가 없네)
惶恐灘頭說惶恐,(황공탄 패배가 부끄럽기 짝이 없고),
零丁洋里嘆零丁.(영정양에서 고립되어 사로잡힘을 한탄하네)
人生自古誰無死,(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되는 법),
留取丹心照汗青.(내 이 충심은 청사에 남겠지.) - 문천상(文天祥), 과영정양(過零丁洋)

가장 마지막 구절 "내 이 충심은 청사에 남으리(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중 나오는 "죽는 그 순간까지 이 한 몸 최선을 다하리(鞠躬盡瘁,死而后已)"와 더불어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시구이다. 

고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 시가 갑자기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입신양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힘든 학업과 업무 부담을 이겨냈을 고인은 무한경쟁의 벼랑 끝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디뎠네.(辛苦遭逢起一經) 그 경쟁 속에서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구나.(干戈寥落四周星) 하지만 이제 내가 어쩔 수 없는 과부하가 걸리니(身世浮沉雨打萍) 한탄스럽지 그지없구나?(零丁洋里嘆零丁) 어차피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인생(人生自古誰無死), 내 일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구나.(留取丹心照汗青)”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사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어 총성 없는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면서 A 부사장 같은 굴지의 기업인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 역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중에서 4당 5락의 과도한 학업 부담을 덜어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교육을 지향한다는 오늘날에도 수백만 청소년들이 여전히 70년대 북한식 별보기 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꼭두새벽부터 새벽녘까지 과도한 학업에 치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바늘 꽃을 구멍도 없을 것 같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다)’에 다름 아니다.
결국 무책임한(?)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일방적 기대와 압박 속에서 청소년들은 과부하가 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청소년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성인들까지 삶의 벼랑에 몰리는 이 순간 사마천이 사기史記에 남긴 한 구절은 깊이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輕于鴻毛。
(사람은 결국 세상을 뜨는 법이지만 태산처럼 크게 살다 가느냐 기러기 깃털처럼 가볍게 살다 가느냐가 문제다.)

삶을 태산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고 기러기 털처럼 사는 것은 무엇인가?

케네디의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라” 말처럼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기업에 유용한 인재가 되고 가정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이 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이바지하는 그런 삶이 태산 같은 삶일까? 그렇다면 기러기 털과 같은 삶은 또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20세기까지의 태산 같은 삶은 위와 같이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 모두 이익이 되고 성과를 내어 말 그대로 입신양명을 하는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버전의 태산형泰山型 삶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주변 사람, 자신이 속한 조직, 그리고 국가와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 네트워크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최선을 다한 당당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人生自古誰無死,鞠躬盡瘁,死而后已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사는 법.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현세에서 태산처럼 훌륭하고 커다란 인생을 살다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신 고인이 이제는 모든 회환과 번뇌를 털어버리고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인생을 즐길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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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유덕화, 장쯔이, 금성무의 뒤얽힌 사랑이야기 십면매복十面埋伏(한국개봉명: 연인) 속 절창絕唱 가인곡佳人曲

문학 2009/09/26 06:34



佳人曲 《汉书·李夫人传》

 北方有佳人,绝世而独立。
一顾倾人城,再顾倾人国。
宁不知倾国与倾城,佳人难再得。

北方有佳人,絕世而獨立。
一顧傾人城,再顧傾人國。
寧不知傾國與傾城,佳人難再得。
 
북쪽에 절세의 미인이 홀로 있거늘
한번 보면 도시가 사라지고 또 보면 나라가 없어지네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절세미인은 다시 얻기 힘들지니.
『한서·이부인전』
                                                                        
오늘은 9/23자 포스팅(☞ 바로가기)에서 주유왕周幽王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던 한무제汉武帝의 총비였던 이부인李夫人을 그린 노래인 가인곡佳人曲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생각 외로 중국 여인들과 이야기하다가 농담으로 응용표현하기 참 좋은 내용입니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 익숙해진 것은 금성무, 유덕화, 장지이(요즘 표현식으로 하면 장쯔이. 이후 장쯔이로 표기)가 출연했던 연인(원제: 십면매복)에서 위의 동영상처럼 장쯔이가 부르면서 입니다.
(여기서 잠깐 사족 하나. 우리나라 외국어 표기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금성무, 유덕화는 한자 독음방식으로 읽는 것이 더 익숙한 반면 장지이의 경우는 중국어 발음 대로 읽는 편이 훨씬 익숙하여 언론 매체에도 보면 통일성 없게 등장하기 일쑤이고 독자들, 관객들 입장에서도 혼선이 있는 편입니다. 과연 현행대로 중국어 발음대로 읽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한자 독음대로 읽는 것이 좋은지 참 헷갈리는 문제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한자독음대로 읽는 편이 좋다고 판단되어 싱싱차이나 블로그에서는 한자독음을 기본으로 하되 필요할 시 중국어 발음대로 표현하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여전히 표음문자로써 왠만한 외국어의 발음은 기본적인 표기가 가능한 한글의 융통성을 최대한 활용해 해당외국어 발음대로 표기하는게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항상 고민하는 문제인데 참 어렵네여^^;;)

이 곡은 원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와 함께 2대 기전체紀傳體 역사서라 불리는 반고班固가 쓴 한서漢書의 이부인전李夫人傳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부인은 한무제漢武帝 시기의 비빈 중 한 명이었는데 그 미모가 천하절색이었다는군요. 하지만 아무리 이뻐도 일단 황제인 한문제의 눈에 띄어야했겠죠?
그때 나선 이가 자신의 오라비인 이연년李延年입니다. 이연년은 음주가무에 워낙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데다가 말빨이 장난이 아니어서 감칠맛 나는 이야기꾼으로도 이름을 날렸죠. 이런 이연년이 천하절색으로 주위의 명성이 자자하던 동생을 그대로 놔둘리 없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겠죠?^^

마침 황제 앞에서 자신이 노래를 부를 일이 생기자 바로 이 가인곡佳人曲을 멋들어지게 뽑아올립니다. 싱어송 라이터로 재주가 만만찮던 이연년이 그 감질맛나는 목소리로 뽑아올렸으니 의미 전달이 퐉퐉 되는 것은 당연지사!!! 태연이의 안습크리마저 무색하게 만들어버리는 박효신의 놀라운 가창력이라고나 할까요?^^


(개인적으로 소녀시대에서 태연이가 가창력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조~금 안습이네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马有失蹄,人有错手)

이연년이 부르는 가인곡을 들은 한무제는 "과연 그런 절색이 있단 말이더냐?"하고 의구심을 표했고 이에 이연년은 "사실 제 누이가 그렇게 절색이옵니다."라고 아룁니다. 한무제는 속으로 '이런 염치없는 자식, 지 동생 이쁘다는거였어? 저걸 그냥 확~'하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궁궐로 이부인을 부르죠. 근데 이게 왠걸요? 한무제는 이부인을 보자마자 빛이 블랙홀로 3x10^8의 속도로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확 꽂혀버립니다.
이후 이부인은 한무제의 총애를 받으며 창읍왕昌邑王을 낳으나 체질적으로 허약했던 탓에 갈수록 초췌해지면서 병에 시달립니다. 이때 이부인은 절대자의 여인, 황제의 여인, 왕의 여인이 가져야할 최고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바로 병색에 찌든 자신의 모습을 절대 한무제에 보여주지 않은 것입니다. 이부인은 너무나 잘 알았던거죠. 비빈 처첩이 숱하게 있는 황제의 입장에서 설령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총애를 받았다고 해도 일단 현재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나면 예전의 자신의 아름다웠던 모습에 대한 한무제의 기억은 깡그리 날아가면서 총애하던 그 마음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거라는 것을 말이죠.
한무제는 이부인이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데 대해 서운해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했지만 이부인의 선택은 옳았죠. 자신이 죽고나자 한무제가 비통해 하며 이부인의 초상화를 궁궐에 걸어놓고 항상 쳐다보며 그리워했고 이연년을 비롯해 서역원정에 나서는 이광리李廣利등 오라비 등을 크게 중용하였으니까요.

약~간 핀트가 안 맞지만 그래도 앞선 포스트(☞ 바로가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士为知己者死,女为悦己者容,马为策己者驰《战国策》/ 士為知己者死,女為悅己者容,馬為策己者馳《戰國策》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아끼는 이를 위해 몸단장을 하고 말은 자신을 부리는 이를 위해 달린다.

라는 말이 맞는듯 하네요. 이부인은 자신을 아껴주는 한무제를 위해 몸단장을 하고 마지막까지 꾸미지 않은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은 거니까요.

우리나라 여자 연예인들 중에도 생얼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 분들도 계시다는데 아마 같은 이유?^^

여러분들의 댓글과 추천이 저를 더욱 힘나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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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날아라뽀 2009/09/26 0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싱싱이차이나님 잘보고 갑니다.^^
    포스팅을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것 같아요^^
    rss 등록하고 갈께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 BlogIcon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26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날아라뽀님~
      편하게(?^^;;) 보면서 고전에 대해서
      그리고 중국어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접하게
      하고 싶은게 제 마음입니다.
      공부가 될 것 같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네요~^^
      즐거운 하루 되시고 행복 충만하세요^^

  2. BlogIcon 태아는 소우주 2009/09/26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호 .

    이제는 옥편을 꺼내들고 글을 읽어야 겠어용^^**

    싱싱 차이나님~~!!!

    이를 어찌합니까~~

    마치 중국어 학당에 온 듯한 기분이 ~~!!

    그래도 즐겁습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 BlogIcon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26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아직 옥편이나 중국어 사전을 쓰실 필요는 없는데여~^^
      그냥 중국 문화나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좀 연관되는 내용으로 배경지식 전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나름 중국어 학습을 위해 좀 이것저것 구상하고는 있는데
      구체화가 잘 안되서~^^

      그래도 즐거우시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한주 되세요^^

[시가] 과영정양過零丁洋 - 문천상文天祥

문학 2009/09/20 02:09

앞서 해하가垓下歌 포스팅을 마무리하면서 문천상의 과영정양의 마지막 귀절을 제가 살짝 변형했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과영정양 시诗 전문을 보고 그 의미도 살펴보죠. (해하가 포스팅 보실 분은 ☞ 여기로)

过零丁洋 文天祥

辛苦遭逢起一经,干戈寥落四周星。
山河破碎风飘絮,身世浮沉雨打萍。
惶恐滩头说惶恐,零丁洋里叹零丁。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

과영정양 문천상
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딛었건만
전란 속에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구나
대송 강산 처참히 짓밟히니
내 힘 다한들 별수가 없음이니.
황공탄 패배가 황공하기 짝이 없고
영정양에서 고립되 싸우다 포로됨을 한탄하네.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되는 법
내 이 충심 청사에 남겠지.

앞선 해하가 포스팅에 이용했던 구절은 바로 가장 마지막 구절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입니다. 중국에서는 충심을 이야기하는 구문으로 제갈량诸葛亮의 출사표出师表 내의 "鞠躬尽瘁,死而后已(죽는 그 순간까지 한몸 최선을 다하다)"와 더불어 가장 애용되는 구문입니다.

문천상이 관직 생활을 한 때는 바로 남송南宋 말기, 몽골의 원元나라 쿠빌라이칸의 공격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동안 남송 방어의 핵심이던 양양성襄阳城(지금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阳)이 함락당하고 임안성临安城(지금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가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1278년 남송은 애산崖山으로 천도를 하고 문천상은 조주潮州에서 몽고군 저지작전을 펼쳤으나 포로가 되죠. 그리고 이듬해인 1279년 남송은  멸망합니다.

문천상은 자신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옥중에서 이 시를 읊으며 남송 조정에 대한 변함없는 충심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성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네요.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史记》
사람은 결국 세상을 뜨는 법. 결국 태산처럼 크게 사느냐 기러길털처럼 가볍게 사느냐 문제이다.

사마천司马迁이 사기史记에 남긴 이 한마디에서 사마천 그의 삶에 대한 자세,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문천상처럼 충신들도 그런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을 태산泰山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고 기러기털鸿毛처럼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쉽게 답이 나올 화두는 아닌 듯 하네요. 우리 휴일날 천장보면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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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태아는 소우주 2009/09/20 0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천상이 옥중에서도 충심에 우러나서 '태산' 처럼 살기 위해
    저런 '시'를 남긴 것인가요?
    참.. '대의'가 무엇인 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 저런 충신이 몇명이나 있을 지 잘 모르겠네요.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그리고 직장내에서의 파벌 속에서도
    자기자신의 대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BlogIcon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저런 충신...
      아니 나라를 생각하는 위정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대의, 그 자신만의 대의가 사회선이어야
      하는 점도 있겠죠^^

[역사] 후흑厚黑의 미실

MBC 선덕여왕 2009/09/01 16:18
와우!!

1달만의 포스팅!!

그동안 일도 조금 바빴지만 무엇보다도 이 놈의 블로깅을 어떻게 해줘야 좀더 많은 이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블로그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고민도 하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1달 활동하고 1달 쉬고~
완전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 못하는 전형적인 방법을 그대로 재현하다니!!!T.T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블로그~ 지금은 답을 찾기 힘들다.
그저 내가 가는 길을 묵묵히 갈뿐~

지난 8월 17일 선덕여왕 25편을 보다가 몇가지 내용이 블로깅할만해서 모아두었는데
다시 활동 개시다!!! 고!!고!!고!!

아래 장면은 천명공주를 잃고 슬픔 속에 오열하며 미실에게 저주를 퍼붓는 황후의 모습이다.


미실이 예의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이며 다가와 나긋한 목소리로 황후의 속을 긁는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중국 근대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이종오李宗吾 후흑학厚黑学이라는 말을 세상에 던지며 역대 뭇 황제와 지도자들은 이 후흑학에 정통한 이들이었다는 말을 하였다.

天下英雄豪杰,脸皮要厚如城墙,心要黑如煤炭。
(천하의 영웅호걸이라 함은 상판데기가 성벽만큼 두꺼워야 하고 심보는 석탄처럼 시커매야 한다.)

후흑학에 대한 포스팅은 여기로  ☞ 厚黑学

과연 미실은 당시 시대상황과는 배치되게 여성으로써 천하를 움켜쥔 자였다.

후흑신공을 익힌 절세 고수!!! 미실!!!

그녀에게 그동안 찍소리 못하고 숨죽이고 있던 황후가 드디어 저주로 일갈天打五雷轰한다!!!

"네 년은 죽을 것이다. 네 년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짓밟히고 혼자서 외로움에 떨다 죽을 것이다! 잠을 자도 잘수 없고 먹어도 먹을 수 없고 살아도 살 수 없고 송장처럼 지내다가 비명을 지르다가 소리없이 죽을 것이다. 비석도 없이 무덤도 없이 흔적도 없이 죽으리라. 역사에 네년의 이름은 단 한자도 남지 않으리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던가!!
狗急跳墙,人急烧香。
(개도 궁지에 몰리면 담을 넘고,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기도를 한다)
^^

황후의 일갈이 아마 미실의 귓가에 계속 아른 거릴 것이다. 余音绕梁

사마천司马迁 사기史记에 이렇게 남겼다.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단지 태산처럼 크게 사느냐, 아님 기러기 깃털마냥 X밥으로 사느냐일 뿐.

그래, 미실도 죽을 것이다. 하지만 비석도 없이 무덤도 없이 흔적도 없이 역사에 이름 하나 남지 않고 그대로 간다면 미실 같은 자는 분명 죽기보다 싫어할 법하다.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雁过留声,豹死留皮,人死留名。
(기러기 간 후에는 울음소리가 남고 ~)

하하!!!
한 줌 재가 되고 나면 태산처럼 살았건 깃털처럼 살았건 뭣이 중요할까?
한줌 재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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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춘추오패(春秋五霸)

역사 2009/07/25 10:11
(이 글은 http://baike.baidu.com/view/4770.htm 의 내용을 직접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춘추오패(춘추5, 春秋五霸)

배경: BC770부터 BC476년까지 290 년에 이르는 춘추시대는 전란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노나라 역사서 <춘추春秋>에만 기록된 전란이 무려 480 차례에 이를 정도이다. 사마천은 춘추시대에 군주 시해는 36차례 발생했으며 왕조의 멸망은 52차례에 달하고 사직을 지키지 못하고 도피한 사례는 부지기수라고 했다. 이런 혼란 속에 춘추시대 초기 140 개에 달하던 왕조가 병합을 거치면서 소수만 남게 된다. 소수의 대국간 패권 다툼이 발생하고 패권을 차지한 자가 주나라 천자를 받들고 천하를 호령하게 된다. 춘추시대에 이런 강력한 패자를 가리켜 춘추오패라고 한다.

제환공齊桓公

BC685년에 즉위한 제환공은 재상 관중, 포숙 등을 중용해 정치·경제 분야에서 개혁을 실시해 제나라를 안정시키고 천하 제후를 호령하는 최초의 패자가 된다. 관중이 제안한 존왕양이尊王攘夷 내걸고 제후를 단결시켜 외적에 대항했으며 중원을 노리던 남방 강국 초나라를 저지함으로써 위명을 떨쳤다. 환공은 채구蔡丘 회맹을 통해  패자지위를 인정받는다.

진문공晉文公

제환공에 이어 패자가 이는 진문공이다. BC633 초나라 성왕成王 초나라·정나라·진나라 연합군과 함께 송나라 도읍인 상구商丘(하남성 상구현 河南省商丘縣) 침공하자 진문공은 송의 원군요청에 응해 제나라·진나라를 포섭해 세력을 키우는 한편 ·위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초나라를 고립시킨다. 이에 초나라 영윤令尹 자옥子玉 대노하며 진나라를 공격한다.

진문공은 초나라의 예봉을 피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일단 부대를 90 후퇴시킨다. 당시 30리를 1一舍 했으니까 삼사三舍 후퇴한 것이다. 진나라가 삼사 후퇴退避三舍 다시 위나라 성복城濮(산동성 폐현憋縣)까지 후퇴했다. 성복은 진나라와 인접해 있어 보급이 용이하고 진나라·제나라·송나라 원군과 회합하기 적당한 지역이었다. BC632 4 진나라와 초나라 양군이 결전을 벌였는데 진나라가 초나라 군을 유인해 고립시켜 전멸시켰다. 성복전투는 군사학적으로 먼저 후퇴를 하여 양보를 상대를 제압하는 전술을 선보인 사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후 진문공은 주양왕周襄王 제후를 전토踐土(하남성 광무光武) 초청하여 회맹을 가진다. 이때 주천자는 진문공에게 후백侯伯 직위를 하사하고 자유로이 정벌을 있는 권리를 부여하면서 패자 지위를 인정했다.

송양공宋襄公

주양왕周襄王 13(BC 639) , ·제·초 군주가 제나라의 녹지鹿地 모여 회맹을 가졌다. 제환공 사후 줄곧 패자의 지위를 노리던 송양공은 자신이 회맹 개최 맹주 신분인데다가 작위 역시 초나라나 제나라보다 높기 때문에 패자는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성왕은 송양공을 억류한 군대를 몰아 송나라 영토를 침략한 풀어주었다. 송양공은 조급함과 허명 뿐인 인의만 외쳤기에 패자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물론 신용을 지키고 인의로써 사람을 대하였기 때문에 패자로 봐야한다는 관점도 있으나 진정한 패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초장왕楚莊王

초나라는 제환공이 패자일 중원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저지당한 동쪽(중국 동남부)으로 진공, 여러 소국을 병합하면서 세력을 확대하였다. 제나라가 몰락하자 초나라는 나라와 패권을 경쟁했다. BC598 초장왕은 (하남성 정주郑州)에서 진나라와 결전을 벌여 대승하였고, 초장왕은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진목공秦穆公

나라가 패자일 때 서쪽의 진나라 역시 강성해졌다. 진목공은 중원으로 진출하여 패자를 노렸으나 진이 있어 서쪽 10여 소국을 병합하여 함곡관函谷關 서쪽 일대에서 패권稱霸西戎을 행사했다. <한비자·십과편韓非子·十過篇>에 따르면 당시 12개국을 병합하고 1000여리의 영토를 개척했다兼國十二,開地千里고 한다.

오왕 부차·월왕 구천 吳王夫差 越王勾踐

춘추 말기 오나라와 월나라가 강성해지면서 중국 동남부에서 패권을 다투었다. BC494년 오왕 부차는 월나라를 침공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구천을 생포하면서 월나라를 굴복시킨 후 제나라를 공략, 패배시켰다. BC482년 황지黃池에서 회맹을 갖고 패권을 차지했다.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 패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와신상담한 끝에 오나라를 멸하고 제나라·진나라와 서(산동성 등현滕縣)에서 회맹을 갖고 패자가 되었다.

종합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는 주왕실의 권위가 약해졌을 때다. BC 770 주평왕周平王 도읍을 낙읍洛邑(하남성 낙양洛陽)으로 동천한 후에는 주왕실 국력이 더욱 기울었다. 과거에는 천자가 제후를 통솔하며 직접 정벌을 하였지만 동천 이후에는 제후이 직접 정벌을 하는 처지가 것이다. 신흥지주 계급이 권력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주나라의 노예제 역시 붕괴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패자의 상징은 바로 제후들을 회맹에 참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이룬 제환공齊桓公 강소백姜小白, 진문공晉文公 희중이姬重耳, 초장왕楚莊王 미려羋旅, 오왕吳王 부차夫差, 월왕越王 구천勾踐 다섯 제후가 진정한 춘추오패春秋五霸 인정받고 있다.

송양공宋襄公 과대망상에 빠져 초나라의 권위로 제후를 회맹하려 했으나 패자가 되기는커녕 되려 궁지에 빠졌으니 언급할 가치가 없다.

반면 주왕실 붕괴를 막은 정장공鄭莊公 춘추 1패자로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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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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