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生当作人杰
재미있게 익히는 중국어 세상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Notice

生當作人傑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Archive

2010/09/06 16:32 百家爭鳴/一飛衝天
본 글은 제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의 백가쟁명 코너에 게재한 문장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XINGXING-  ☞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해당 글 보기


몇 년 전에 『통섭(Consilience)』이라는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통섭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성리학과 불교에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쓴 해당 서적으로 인해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한다는 현재의 의미를 가지면서 통섭 신드롬으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통섭의 의미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연결에만 국한되지 않고 “학문 섭렵에 편식이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특히 예술과 경영, 예술과 IT를 접목한 애플의 아이폰이 개리 해멀 교수가 제시한 업계구조혁신을 현실화시키면서 통섭의 지혜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연의』 속에도 통섭의 인재들이 등장한다.
“꼼짝하지 않고 천하의 변화를 꿰뚫어 본다.(足不出戶,能知天下事)”던 제갈량(諸葛亮)과 “난세에는 간웅이요, 치세에는 능신이다.(治世之能臣,亂世之奸雄)” 이라던 조조가 그 주인공들이다.

칠실삼허(七實三虛)의 픽션인 『삼국연의』는 물론이고 정사(正史)인 『삼국지(三國志)』에서도 증명되었듯이 삼국시대 최고의 팔방미인형 지도자이자 CEO인 조조는 명실상부한 통섭형 인재였다. 특히 인문분야에서 보여준 그의 통섭 능력은 삼국시대 여러 인물들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중앙 정계에서 핵심 엘리트 인재로 활동한 만큼 유가(儒家)적 베이스를 갖추고 있었고 영웅호걸이 난무하던 당대에 그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의 병가(兵家)까지. 그가 남긴 『손자주(孫子注』는 『손자병법(孫子兵法)』 연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매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해설서이다. 
법가(法家)에도 정통했던 그는 국정 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하여 유비와 손권을 압도하는 국력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구현령(求賢令)」과 「단가행(短歌行)」을 보면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현실상황에 적합한 인적자원 활용의 묘를 발휘하는 조조를 만날 수 있다. 

「구현령」
흠이 있어도 능력만 있으면 인재를 등용한다.
明揚仄陋,唯才是舉,

「단가행(短歌行)」☞ 더 자세한 내용(클릭하세요)
산은 한 주먹 흙을 마다하지 않고 더 높아지고자 하고 물은 한 줄기 물을 배척 않고 더 깊어지려고 하는 법. 주공(周公)이 인재가 찾아오자 먹던 밥을 세 번이나 뱉어내고 맨 발로 뛰어나가 모셔 천하를 안정시켰듯이 나 역시 그러고 싶구나. 
山不厭高,水不厭深。周公吐哺,天下歸心。

8척 장신(184cm)에 우유빛깔 피부, 흉중에 가득한 경륜(經綸), 마흔의 젊은 나이에 국무총리(승상)에 임명. 제갈량은 엄친아였다. 이런 엄친아가 통섭의 인재이기까지 했으니. 그는 법가를 기반으로 병가와 유가, 도가(道家) 등의 인문학 소양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출발이 늦었던 유비 집단을 조조와 손권에 필적하도록 만들 만큼 뛰어났던 그가 조조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이라면 IT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목우유마(木牛流馬)와 제갈노(諸葛弩)이다. 그는 신속한 군량 운송을 위해 편리한 수송수단인 목우유마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병력 상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인 제갈노를 만들어 전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했다.
그가 이처럼 통섭형 인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자구(字句) 해석 및 경전 연구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당시 세태에 역행해 자신 만의 통섭 학습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가 형주(荊州)의 양양(襄陽)의 재야에서 밭 갈며 독학의 재미에 빠져 있을 때 주변에는 최주평(崔州平), 석광원(石廣元), 맹공위(孟公威), 서서(徐庶) 등 인재들이 고등 고시 준비에 한창이었다. 고시 합격에 필요한 유교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들은 병가, 법가, 종횡가(縱橫家) 등 불온서적에만 집중하는 제갈량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자네 왜 자꾸 불온서적에 눈을 돌리나? 자네 정도면 고등고시에서 상위권 합격도 가능한데 전공과목은 이리 대충 보고 말일세.”라고 질책 아닌 질책을 했다. 그러자 제갈량은 “허허, 요즘 같은 난세에 고시 공부에 매달리자니 불안해서 말일세. 게다가 유교 경전은 그 큰 뜻을 살피면 될 터인데 굳이 그리 자세히 볼 필요가 있겠나? 시대 흐름에 맞춰 공부 해야지 이 사람들아. 내 롤모델이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아닌가? 불온서적 같아도 더 큰 가르침들이 그 속에 있으이.”라며 벗들에게 충고를 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오픈 마인드로 통섭의 학습을 했는지 알려준다. 

그의 이런 학습 자세는 도연명(陶淵明)의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 나오는 자세와 매우 흡사하다. 

“바른 독서법이란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는 법이다. 그저 여러 번 읽다가 얻게 되는 깨달음에 너무 기뻐하다 보면 허기도 잊게 될지니." 
好讀書,不求甚解。每有會意,欣然忘食

이렇게 큰 뜻을 품은 통섭형 올 라운드 플레이어인 제갈량은 가장 허약하던 유비를 조조와 손권에 버금가도록 만들었다. 
조조와 제갈량은 자신들이 가진 스페셜리스트에 가까운 지식(조조: 병가, 제갈량: 법가)을 중심으로 다방면에 걸친 정보를 잘 융합해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했기 때문에 삼국시대 영웅들 가운데서도 유독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폐쇄적인 우리나라도 각계 각층에서 통섭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고등교육열이 반드시 통섭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썩 신통치 않다. 
또한 기업체에 조조와 같은 통섭형 CEO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통섭형 직원이 제갈량처럼 활약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에 그런 기업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 자문(自問)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추세를 타파할 수 있는 기업과 학계의 협력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앞서 해하가垓下歌 포스팅을 마무리하면서 문천상의 과영정양의 마지막 귀절을 제가 살짝 변형했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과영정양 시诗 전문을 보고 그 의미도 살펴보죠. (해하가 포스팅 보실 분은 ☞ 여기로)

过零丁洋 文天祥

辛苦遭逢起一经,干戈寥落四周星。
山河破碎风飘絮,身世浮沉雨打萍。
惶恐滩头说惶恐,零丁洋里叹零丁。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

과영정양 문천상
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딛었건만
전란 속에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구나
대송 강산 처참히 짓밟히니
내 힘 다한들 별수가 없음이니.
황공탄 패배가 황공하기 짝이 없고
영정양에서 고립되 싸우다 포로됨을 한탄하네.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되는 법
내 이 충심 청사에 남겠지.

앞선 해하가 포스팅에 이용했던 구절은 바로 가장 마지막 구절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입니다. 중국에서는 충심을 이야기하는 구문으로 제갈량诸葛亮의 출사표出师表 내의 "鞠躬尽瘁,死而后已(죽는 그 순간까지 한몸 최선을 다하다)"와 더불어 가장 애용되는 구문입니다.

문천상이 관직 생활을 한 때는 바로 남송南宋 말기, 몽골의 원元나라 쿠빌라이칸의 공격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동안 남송 방어의 핵심이던 양양성襄阳城(지금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阳)이 함락당하고 임안성临安城(지금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가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1278년 남송은 애산崖山으로 천도를 하고 문천상은 조주潮州에서 몽고군 저지작전을 펼쳤으나 포로가 되죠. 그리고 이듬해인 1279년 남송은  멸망합니다.

문천상은 자신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옥중에서 이 시를 읊으며 남송 조정에 대한 변함없는 충심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성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네요.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史记》
사람은 결국 세상을 뜨는 법. 결국 태산처럼 크게 사느냐 기러길털처럼 가볍게 사느냐 문제이다.

사마천司马迁이 사기史记에 남긴 이 한마디에서 사마천 그의 삶에 대한 자세,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문천상처럼 충신들도 그런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을 태산泰山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고 기러기털鸿毛처럼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쉽게 답이 나올 화두는 아닌 듯 하네요. 우리 휴일날 천장보면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볼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XINGXING 生当作人杰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