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삼성전자 부사장의 자살과 문천상, 사마천

시사 2010/02/01 16:59
본 글은 제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의 백가쟁명 코너에 게재한 문장입니다.
앞으로 본 사이트 및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백가쟁명 코너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XING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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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하병준] 삼성전자 부사장의 자살과 문천상 그리고 사마천



얼마 전인 1월 26일세계에 자랑할 만한 국내 넘버원 기업 삼성전자 부사장 A씨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살 사유로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업무 과중과 고속 승진 질주 속에 걸린 갑작스런 브레이크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작별을 했다는 것이 현재 조사 결과이다.

이 뉴스를 접하는 순간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중국의 두 선인(先人)이 있었으니 바로 남송南宋 말기의 충신 문천상文天祥과 사성史聖으로 추앙받는 사마천司馬遷이 그들이다.

문천상은 바로 원元나라 쿠빌라이칸의 공격이 막바지이던 남송 말기 재상으로 당시 남송은 방어의 핵심이던 양양성襄陽城(현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陽)이 함락당하고 도읍인 임안성臨安城(현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마저 함락되기 직전의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여있었다. 1278년 남송은 애산崖山으로 천도를 하고 문천상은 조주潮州에서 몽고군 저지작전을 펼쳤으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듬해인 1279년 남송은 멸망하는데 문천상은 ‘과영정양過零丁洋’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충심을 역사에 남긴다. 

辛苦遭逢起一經,(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디뎠네),
干戈寥落四周星.(전란 속에 어느덧 4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구나)
山河破碎風飄絮,(이 강산 오랑캐에 처참히 짓밟히니),
身世浮沉雨打萍.(내 힘을 다 쏟아 부어도 국면을 전환시킬 수가 없네)
惶恐灘頭說惶恐,(황공탄 패배가 부끄럽기 짝이 없고),
零丁洋里嘆零丁.(영정양에서 고립되어 사로잡힘을 한탄하네)
人生自古誰無死,(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되는 법),
留取丹心照汗青.(내 이 충심은 청사에 남겠지.) - 문천상(文天祥), 과영정양(過零丁洋)

가장 마지막 구절 "내 이 충심은 청사에 남으리(人生自古誰無死,留取丹心照汗青)"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중 나오는 "죽는 그 순간까지 이 한 몸 최선을 다하리(鞠躬盡瘁,死而后已)"와 더불어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시구이다. 

고인의 부음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 시가 갑자기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국 대표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입신양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힘든 학업과 업무 부담을 이겨냈을 고인은 무한경쟁의 벼랑 끝에 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디뎠네.(辛苦遭逢起一經) 그 경쟁 속에서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구나.(干戈寥落四周星) 하지만 이제 내가 어쩔 수 없는 과부하가 걸리니(身世浮沉雨打萍) 한탄스럽지 그지없구나?(零丁洋里嘆零丁) 어차피 한 줌의 재로 돌아갈 인생(人生自古誰無死), 내 일에 대한 열정과 가족에 대한 사랑은 기억해 줬으면 좋겠구나.(留取丹心照汗青)”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사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어 총성 없는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펼쳐지면서 A 부사장 같은 굴지의 기업인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 역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중에서 4당 5락의 과도한 학업 부담을 덜어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교육을 지향한다는 오늘날에도 수백만 청소년들이 여전히 70년대 북한식 별보기 운동에 버금갈 정도로, 꼭두새벽부터 새벽녘까지 과도한 학업에 치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바늘 꽃을 구멍도 없을 것 같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제대로 된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다)’에 다름 아니다.
결국 무책임한(?)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일방적 기대와 압박 속에서 청소년들은 과부하가 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자포자기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청소년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성인들까지 삶의 벼랑에 몰리는 이 순간 사마천이 사기史記에 남긴 한 구절은 깊이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輕于鴻毛。
(사람은 결국 세상을 뜨는 법이지만 태산처럼 크게 살다 가느냐 기러기 깃털처럼 가볍게 살다 가느냐가 문제다.)

삶을 태산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고 기러기 털처럼 사는 것은 무엇인가?

케네디의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 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라” 말처럼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기업에 유용한 인재가 되고 가정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이 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이바지하는 그런 삶이 태산 같은 삶일까? 그렇다면 기러기 털과 같은 삶은 또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20세기까지의 태산 같은 삶은 위와 같이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 모두 이익이 되고 성과를 내어 말 그대로 입신양명을 하는 그런 삶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버전의 태산형泰山型 삶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주변 사람, 자신이 속한 조직, 그리고 국가와 쌍방향 소통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와 조직 네트워크 속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최선을 다한 당당한 삶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人生自古誰無死,鞠躬盡瘁,死而后已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사는 법.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현세에서 태산처럼 훌륭하고 커다란 인생을 살다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신 고인이 이제는 모든 회환과 번뇌를 털어버리고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인생을 즐길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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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과영정양過零丁洋 - 문천상文天祥

문학 2009/09/20 02:09

앞서 해하가垓下歌 포스팅을 마무리하면서 문천상의 과영정양의 마지막 귀절을 제가 살짝 변형했었습니다. 이왕 나온 김에 과영정양 시诗 전문을 보고 그 의미도 살펴보죠. (해하가 포스팅 보실 분은 ☞ 여기로)

过零丁洋 文天祥

辛苦遭逢起一经,干戈寥落四周星。
山河破碎风飘絮,身世浮沉雨打萍。
惶恐滩头说惶恐,零丁洋里叹零丁。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

과영정양 문천상
힘들게 공부하여 입신양명의 첫발 내딛었건만
전란 속에 어느덧 4년이 훌쩍 지났구나
대송 강산 처참히 짓밟히니
내 힘 다한들 별수가 없음이니.
황공탄 패배가 황공하기 짝이 없고
영정양에서 고립되 싸우다 포로됨을 한탄하네.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되는 법
내 이 충심 청사에 남겠지.

앞선 해하가 포스팅에 이용했던 구절은 바로 가장 마지막 구절 "人生自古谁无死,留取丹心照汗青"입니다. 중국에서는 충심을 이야기하는 구문으로 제갈량诸葛亮의 출사표出师表 내의 "鞠躬尽瘁,死而后已(죽는 그 순간까지 한몸 최선을 다하다)"와 더불어 가장 애용되는 구문입니다.

문천상이 관직 생활을 한 때는 바로 남송南宋 말기, 몽골의 원元나라 쿠빌라이칸의 공격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동안 남송 방어의 핵심이던 양양성襄阳城(지금 호북성湖北省 양양襄阳)이 함락당하고 임안성临安城(지금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가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1278년 남송은 애산崖山으로 천도를 하고 문천상은 조주潮州에서 몽고군 저지작전을 펼쳤으나 포로가 되죠. 그리고 이듬해인 1279년 남송은  멸망합니다.

문천상은 자신이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옥중에서 이 시를 읊으며 남송 조정에 대한 변함없는 충심을 맹세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성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많네요.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史记》
사람은 결국 세상을 뜨는 법. 결국 태산처럼 크게 사느냐 기러길털처럼 가볍게 사느냐 문제이다.

사마천司马迁이 사기史记에 남긴 이 한마디에서 사마천 그의 삶에 대한 자세,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문천상처럼 충신들도 그런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을 태산泰山처럼 사는 것은 무엇이고 기러기털鸿毛처럼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쉽게 답이 나올 화두는 아닌 듯 하네요. 우리 휴일날 천장보면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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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태아는 소우주 2009/09/20 0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천상이 옥중에서도 충심에 우러나서 '태산' 처럼 살기 위해
    저런 '시'를 남긴 것인가요?
    참.. '대의'가 무엇인 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 저런 충신이 몇명이나 있을 지 잘 모르겠네요.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그리고 직장내에서의 파벌 속에서도
    자기자신의 대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BlogIcon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2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저런 충신...
      아니 나라를 생각하는 위정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대의, 그 자신만의 대의가 사회선이어야
      하는 점도 있겠죠^^

[역사] 여성 리더쉽 대담!! 덕만 VS 문노 (선덕여왕 33화 上)

MBC 선덕여왕 2009/09/16 04:30
드디어 선덕여왕 33편이 방영되었습니다.
참 사람이 간사하죠? 블루먼데이 증후군이라고 하잖습니까? 월요일이 그냥 싫은...
근데 요즘은 월요일이 무지하게 기다려집니다. 목이 빠져라 선덕여왕 기다리느라 말이죠.

일요일은 하루가 여삼추一日如三秋 같던 걸요.^^

유신과 덕만은 두번째 비제의 답을 찾습니다. 그리고 유신랑이 승리 포인트를 획득하구요.
이제 승부는 무술 비제를 겨루게 될 세번째 비제로 미뤄졌네요.

두번째 비제 답인 '삼한통일'에 대해 덕만은 문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눕니다.

덕만이 삼한통일이라는 대업 완성을 위해 여자인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냐고 묻자 문노는 천연덕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역시 문노는 문노네요. 제가 앞서 문노가 여자는 재주가 없어야 제맛 男人有德便是才,女人无才便是德라는 시대사상에 지배를 받아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다 이야기했으나 그는 여성의 능력을 낮춰보는 그런 소인배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제가 소인배의 심보로 그의 큰 도량을 넘겨짚었나보네요.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
그가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 것은 부마가 되려하는 귀족세력 간 충돌, 귀족 및 민간에 만연해 있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관념을 걱정한 것이지요. 물론 문노가 이런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죠.ㅋㅋ 제가 뒤끝이 좀 있어서리~

서경書經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牝鸡无晨。牝鸡司晨,惟家之索。《书经·牧誓》
암탉은 본디 새벽에 울지 않거늘 암탉이 새벽에 우니 그 집안 운이 다했구나.

우리나라도 아직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리고 아들을 둔 어머니들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사상에 속박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이거 보면 중국 주周나라와 춘추시대春秋时代의 공자孔子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우리가 아직도 좋아라 마지 않는 세계 4대 성인이신 공자님 말씀을 담은 논어論語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唯女子与小人难养也。近之则不孙,远之则怨。《论语·阳货》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 가까이 지내면 기어오르고 멀리하면 지랄한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종법宗法제도를 통한 남성의 주도권 장악이 너무나 자연스레 이루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좌측 사진에 보면 頭號大混蛋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공자를 "울트라 캡숑 병신"이라고 욕한 것이며 중간 사진은 홍위병이 공자 생가에서 그의 동상을 철거하는 장면, 그리고 우측은 다 아시다시피 모택동입니다. 근데 좌측 사진의 한자가 모두 정자체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간자체가 보급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랬기에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공자는 홍위병의 제1 타도대상이 되었습니다. 비공批孔(공자를 비판한다)이 강렬히 이루어졌죠. 모택동毛泽东은 "여자는 천하의 절반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女人能顶半边天"이라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동안 2500여년 간 중국을 지배했던 공자를 필두로 한 유학관념은 부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과오와 공자의 유학사상에 대한 포폄은 뒤로 하더라도 여하튼 오늘날 중국이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장 활발하고 가정내 여성의 위상이 가장 높은 건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죠.^^

여하튼
문노의 대답에 순간 '멍' 때리는 Princess 덕만.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나 공주야 공주! 짜식이 내 아비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진짜 말 막하네' 뭐 이런 생각하는 눈빛입니다.ㅋㅋㅋ
덕만은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가졌습니까?"는 문노의 물음에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개인의 이利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당연히 우리의 딸깍발이 문노 선생님은 "오~이런, 이런, 공주~님. 어찌 대업을 이야기하시면서 개인의 이를 꺼내드셨나요?"하고 되묻습니다. 당연하죠.

君子喻以义,小人喻以利。《论语·里仁》
군자는 의를 중시하고 소인은 이익을 쫓는다.

덕만공주가 쫓으려 하는 이익은 소인이 쫓는 것이고 이 소인이라 함은 앞서 말한 여자와 함께 다루기 힘들다 한 공자님 사상과도 좀 배치되는 면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유학 소양을 갖춘 문노 입장에서는 왠만하면 피했으면 하는 답이었죠. 근데 덕만 공주가 그렇게 말했으니. 하지만 덕만 공주는 "그렇다면 신라는 왜 그런 대업을 꿈꾸었습니까?"라며 되묻습니다. 하긴 '의'와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서리.

신라의 삼한통일 대업 달성을 위해 왕이 되려는 덕만의 이利를 문노는 사사롭다하나 크게 보면 대업달성 자체는 결국 신라에 좋은 대'의'입니다. 반면 신라가 꼭 그 대업달성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는 신라의 '이'일 뿐 삼한땅의 백성들의 '의'는 아닌 법. 당시 상황에서 단순히 삼한통일이라는 '의'를 따르려 했다면 가장 강력한 고구려가 삼한통일을 하도록 백제와 신라가 백기들고 항복을 해야겠죠.
덕만은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려는 걸 내 개인의 이기심으로 몰지 마라'며 문노를 살짝 눌러줍니다.

그리고 덕만은 문노를 그로기 상태로 몰기 위해 "미실이 뛰어나나 성골이 아니므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왕권이 강해져야 할까요? 아니면 신권이 강해져야 할까요?"하고 질문을 던지니까 "왕권이 강해져야 하나 여왕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기준으로, 대업 달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정치인을 눈앞에서 목도亲眼目睹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미실이 그 대업을 이루면 되지요? 왜 꼭 공주님이어야 합니까?"라며 화려한 되치기로 받아칩니다.

그러자 덕만은 심사숙고深思熟虑 끝에 "미실은 왕이 될 능력이 있으나 왕을 꿈꾸지 않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대업 달성을 못합니다. 오로지 꿈꾸는 자만이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전 제가 불가능한 꿈을 꾸듯이 신라도 불가능한 꿈을 꾸도록 할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희망을 모두 가지게 할 것입니다."라고 멋지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까 무릎팍도사에 비rain가 나와서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비가 좋고 싫고를 떠나 저 말만큼은 참 와닿습니다. 제가 실천하기는 어려워서 그렇지만...

중국 대륙과 대만 모두에게 존경받는 손중산孙中山 손문孙文선생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成者为王,败者为寇。
이기면 왕이고 지면 역적이다.

덕만이 말하는 희망이 정말 희망이 될지 아니면 미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환상이 될지는 봐야겠지요.

成则希望,败则幻想。
이루면 희망이고 실패하면 환상이니라.

아마 환상을 쫓아 희망을 찾아낸 이들은 유목민족이 있을 것입니다.

한汉나라가 결국은 극복하지 못한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민족 흉노匈奴, 수隋와 당唐이 조공을 바치면서 달래야했던 돌궐突厥, 역사상 최대강역을 확보한 땅따먹기 최강민족 몽골蒙古이 대표적이겠네요.
(금金과 청清을 세운 여진女真이나 요辽를 세운 거란契丹, 고구려高句麗, 말갈靺鞨 등은 농경, 유목, 수렵을 함께 하는 멀티태스킹 민족이니까 제외^^;;)

흉노는 한汉을 패망시킬 정도의 군사력(앞선 왕소군王昭君 포스트 중 유방刘邦이 백등산白登山에서 대패한 걸 말씀드렸죠?^^)을 가지고도 장성长城 이남에 주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선우单于가 중원 점령이라는 환상을 쫓지 않고 희망을 사람들에게 제시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한나라를 침략해 식량을 약탈하고 무기를 탈취하고 여자를 능욕하는 희망. 여기서 희망은 비전이 아닙니다. 당시 흉노인에게 희망은 열악한 북방 환경을 버티고 이길 수 있게끔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종족 번식 하는 것이었지 농경민족 지도자들 마냥 점령 후 점령지에 정착하며 언제 빼앗기고 침입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비전은 필요없었으니까요.

돌궐은 5호 16국 말기 혜성 같이 등장하여 북방의 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수와 당의 북방 변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죠. 중국인들이 성군이니 현군이니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니 하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황제가 되기 전 진왕晋王으로 있을 때 돌궐은 이세민 세력(당시는 아비 이연李延이 대장이었음)을 근본부터 휘청이게 할만큼 세력이 강했으나 묘하게도 중원 입성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이세민에게 두들겨 맞은게 좀 크긴 했지만요. 그들 역시 흉노처럼 생계형 침략에 몰입하죠. 생계형 침략이 환상으로 흐르면 안되죠 배부르고 등 따시고 출산드라형 여인을 어디 좀 얻어보자는 단순한 희망을 쫓은 겁니다.

몽골은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成吉思汗의 지도하에 영토확장을 합니다. 물론 시작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이었습니다. 덕만처럼. 덕만이 언니인 천명공주에 대한 복수심에 여왕이 되려 하듯이 몽골의 칭기즈칸은 자신의 선조인 카불칸과 아비인 예수게이 바토르가 금金의 모략에 빠져 죽은 데 대한 복수심, 불구대천의 원수不共戴天之仇를 갚기 위해 금나라 정벌에 나서고 자신의 사신을 죽인 호라즘의 무하마드에 대한 복수심으로 서역정벌을 나서며 넷째아들 툴루이의 아들의 죽음을 갚기 위해 양양성 공격을 하는등 복수심으로 정복활동을 하죠. 하지만 칭기즈칸은 그런 복수심에 휩싸이면서도 말과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초원지대만 직접 통치영역에 두고 농경지역인 금의 장성이남 지역은 번국 격으로 장수를 파견해(고구려계라 파악되는 무칼리^^Olleh!!!) 다스립니다. 그는 결코 후계자들에게 쓸데없는 환상을 가지고 중원에 정착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쿠빌라이가 그것을 깨었고 결국 제국은 분열하죠T.T). 그는 부족민에게 희망을 주면 부족민이 쫓아오고 그것을 실현시키면 단결이 된다는, 미실의 리더쉽이 아닌 덕만의 리더쉽 철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철저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희망과 환상, 과연 덕만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요?

33편 (하)를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이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좋은 글, 양질의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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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태아는 소우주 2009/09/16 05: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새벽에 넘 멋진 포스팅이세요. 새벽 4시에 저 글을 쓰시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을 지 심히 궁금하네요..^^
    멋진 수요일 되세요~!!

    • BlogIcon XINGXING 生当作人杰 2009/09/16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새벽에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오늘 오전에 쓰려고 했던 포스트
      그냥 끄적거렸답니다.
      컴이 좀 후져서 화면 전환이 오래걸려
      조금 걸렸어여~^^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