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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6 21:10 百家爭鳴/一己之談
그러면서 비유한 인물들이
성군으로 떠받들다 못해 신이 되다시피한 요尧와 순舜이 있고
(차라리 비슷한 시기의 우리의 단군 할배가 훨씬 나을텐데... 신빙성 없는 저들을 떠받든 우리 조상들도 참)
초한楚汉의 영웅들은 항우项羽와 유방刘邦, 그리고 삼국三国영웅들인 조조曹操, 유비刘备, 손권孙权 등이 있다. 아하! 당연 사마의司马懿와 제갈량诸葛亮도 있다.

이종오李宗吾(이하 이종오)는 후흑학의 최고 경지에 이른 인물로 요와 순을 꼽고 있다.

厚而无形,黑而无色。无声无嗅,无形无色。
두꺼우나 형태가 없고 검으나 색이 없으니. 무색무취, 무형무색이로세.

이 정도에 이를진대 어찌 범인이 그들의 상판이 두꺼운지 속이 시꺼먼지 알 수 있으리오.

천하를 자신의 아들이 아닌 타인에게 넘겨주는 도량, 하지만 백양柏杨 선생이 하는 말에 따르면 유학자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그런 아름다운 선양은 없고 치수를 잘한 순과 우禹가 그 세력을 기반으로 요와 순을 압박해 섭정을 하면서 정권을 이양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어차피 신화시대이니 사실 여부를 가릴 수는 없는 법. 하지만 유학자들이 남긴 기록들을 분석하면 요와 순은 말 그대로 후흑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후흑의 성인!!! 흠!!
여하튼 이건 이종오 선생의 이야기이고 본인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히며...

진정한 후흑의 달인은 유방과 조조, 유비, 손권, 사마의이다.

항우와 범증은 상대를 잘못 만났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다.

유방의 얼굴 두께는 생명을 부지하고자 자신의 처자식을 두번이나 마차에서 밀어 떨어뜨린 장면에서 이미 맛보기하고
항우가 자신의 부친을 잡아 항복을 종용하며 항복 않을 시에는 삶아 죽이겠다고 하자 다 삶거든 자신에게도 그 국을 달라는 말로 인증샷 팍 날려버린다.

속이 시커멓기로는
한신과 팽월 등등 공신 숙청 작업에서 High 칼라의 검정 먹물을 들이키는 지독함을 보면 알수 있다.

이런 유방 앞에서 항우는 힘만 무식하게 센 너무나 순진한 하룻강아지였다.


그래서일까
项羽愿与刘邦单打独斗,一决雌雄,刘邦笑谢曰:“吾宁斗智,不能斗力。”
(해석)항우는 유방과 일기토로 승부...쇼부를 보려고 하자 유방이 실 쪼개면서 "무식하게 힘 쓰지말고 대가리를 좀 굴려라. x댕아"
(유방은 당시 지역 流氓 깡패나 다름없었으니까 조금 분위기 살리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 보여짐. 고상하게 "유방이 가볍게 미소를 띄우며 거절하고는 난 힘이 아닌 지혜로 싸우고자 하네" 라고 했을리는 절대 없다 여겨짐..ㅋㅋㅋ)


결국 항우는 오강乌江에서 조각배에 몸을 싣고 강동으로 돌아가 권토중래卷土重来를 도모하지 않고
아녀자처럼 800전사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결을 택한다.
하긴 그 많은 식구가 딸린 기업체가 도산 직전이니 비장한 최후의 선택을 하려 한 점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나 강동으로 돌아가면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유방이 추격해 완전 소탕하기 힘들었고 이후 유방의 천하가 안정되기까지 상당기간 소요되었음을 비춰봤을 때 결코 영웅의 선택은 아니었다 보여진다.

어쨌든 유방의 철면피공(鐵面皮功)에 숫검댕이 속 때문에 항우는 천하패권의 문턱에서 아웃된다.

하지만 어찌 항우 뿐이겠는가?

항우 밑에서 나름 후흑의 일가를 이뤘다고 여기며 항우의 천하제패 초석을 다져주고자 했던 범증范曾과 건달들 가랑이 밑을 기는 굴욕(胯下之辱)을 참은 한신韩信 역시 유방의 철면신공 앞에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만다.

홍문연鸿门宴에서 유방의 눈물을 동반한 철면신공에 한번 무릎 꿇으면서 천추의 한을 품고 사망..지못미

떠돌이 장수가 될 뻔한 방랑검객 한신은 소하萧何의 꼬드김(萧何月下追韩信) 퇴패검법(退霸剑法)에 넘어가 당시 자칭. 타칭 서초패왕西楚霸王으로 본좌에 등극해 있던 항우를 김택용에 3.3 혁명 제대로 함 당하고 마레기 취급받는 나의 스타본좌 마재윤처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카운터펀치를 날리지만 뒤에서 음흉한 속을 인자한 얼굴에 감춘 후흑의 절정고수 유방의 토사구팽(兔死狗烹) 초식에 난도질 당해 차세대 본좌 포스를 뽐내던 제왕齐王에서 보통 검객 초왕楚王으로 급전직하, 결국에는 서지수에 확인사살 당한 홍진호처럼 여태후吕后에게 확실히 제거됨. 물론 진평陈平의 도움이 컸지만.

이종오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평이야말로 진말한초秦末汉初 후흑의 절세고수가 아닌가 한다.
한나라 공자 출신世家出身의 장자방 장량张良/子房도 천리 밖의 승부를 좌지우지하는(运筹于帷幄之中,决胜于千里之外) 무림고수이지만 출신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혼탁한 정치판에서 자신이 때묻는게 싫어 발을 빼고 신선놀음을 하는, 어떻게 보면 난세에는 영웅일지나 태평성대에 필요한 줄타기를 못하는 정치 초단의 풋내기일 수 있다.

반면
신분에 대한 비웃음을 견뎌야 할 만큼 진평은 시작부터 진흙탕에서 몸을 뒹굴며 자라났고 결정적인 순간에 유방이 자신의 철면피공의 유일한 약점, 조문이 드러나며 욱할 때마다 뒤에서 그것을 알아채고 지긋이 내공 운기시켜주며 진정시켜 항우와 한신, 당대 본좌와 차세대 본좌를 한 번에 숙청할 수 있도록 도와준데서 이미 그가 후흑의 달인임이 드러나고, 천하 대권을 잡은 후 아군끼리 도륙을 내는 혈투 중에도 발을 빼지 않고 관망과 처세의 비전을 가동함과 동시에 후흑진경의 진수精髓,真谛를 발휘하여 결국에는 승상의 위치에 오른다.
당시 천하에서 그만큼 처세를 잘한 이는 찾기 드물지니 어찌 세외에 숨어있던 후흑의 절세고수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

여하튼

조조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삼국연의三国演义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만 보면 완전 후흑의 달인도 이런 달인이 없다. 역대 최강이라 할 만 하다.
여백사吕伯奢일가를 도륙하고는 조조가 진궁陈宫에게 한 말은 유명하다.

“宁教我负天下人,休教天下人负我”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날 저버릴 수는 없다)

예형을 황조에게 보낼 때도, 계륵鸡肋으로 유명한 양수杨修를 처단할 때도, 건안칠자建安七子로 문재文才를 떨치고 효성孔融让梨으로 유명한 공융孔融 일가를 박살낼 때 등등 그가 후흑신공을 시전한 경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그의 후흑신공은 다른 사람에게 살짝 살짝 발각이 된다는 점. 아마 그가 의도적으로 흘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신공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웃는다고 웃는 게 아냐!!! 뭐 이런 무언의 압박, 무언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했던 것이 아닐까?

조조가 역대 최강이라면 아마 유비는 역대 최고가 아닌가 한다. 조조의 후흑신공 포스는 누구도 따를 수 없지만 유비의 후흑신공 커리어는 조조도 따르기 힘들지 싶다.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刘备的江山,是哭出来的。”
(천하 얻기, 유비 따라 그저 울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그는 관우关羽, 장비张飞를 얻어 천하를 도모할 때 눈물로 자신의 심성을 포장하여 순진하지만 용력은 초인적인 관우, 장비를 자신의 수하로 붙박아 놨으며, 도겸陶谦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서주徐州를 얻었고 여포吕布 앞에서 눈물을 보임으로써 원술袁术의 압박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았고, 유표刘表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비육지탄 원맨쇼를 하면서 형주荆州 획득의 초석을 다지고, 제갈량诸葛亮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우국충정尽忠报国의 맹세를 보임으로써 삼고초려三顾茅庐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고 조조의 오천 철기의 추격 속에서도 백성을 놓지 않으며 함께 피난을 가면서 눈물을 보이는 치밀함 끝에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 뭐니뭐니 해도 백미는 백제성白帝城에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두손 들만한 Tears to the Heaven을 열창하며 유선刘禅의 승계작업을 마무리 한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 헐후어 중에 다음과 말이 있다.

"刘备摔孩子-收买人心"

(유비가 자식 던진 건 쇼였네. 그저 사람 마음을 얻고자 했음이니)

신야성新野城 전투 후 강하江夏로 피난하다가 두 부인과 아두阿斗(유선의 아명)를 잃었을 때 조운赵云이 일기당천一骑当千의 용맹으로 아두를 데려오자 유비는 자식을 땅바닥에 던지며 "야 이 자슥아, 니 땜시로 조장군 X 될 뻔 했잖아!"라고 했다는데 중국 민간의 헐후어조차 유비의 가공할 후흑신공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에 반해 손
권孙权은 다소 처지는 하수이다. 준본좌급도 안된다고 할까? 그는 유비, 조조가 다 살아 있을 적에는 찌그러져 있다가 그들이 다 Go to the heaven 하고 나서 신공을 맘껏 펼친다.
스타계에서는 마재윤 몰락 후 화려한 쇼맨쉽 세러모니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성은 정도, 그리고 동방불패东方不败의 규화보전葵花宝典이 실전失传하고 나서 오악검파五岳剑派의 맹주가 된 악불군岳不群이나 임평지林平之 정도.

주로 대외에 철면피공을 발휘하기보다는 내부 집단속에 많이 사용한다. 그는 후계자 선정 작업立储之争에서 신하들간 파벌 싸움이 심해지자 중간에서 철면피공으로 조율을 하였다.

이들에 반해 제갈량诸葛亮은 생각보다 꽉 막힌 서생이라 그런지 후흑신공에 심히 둔감했다. 물론 연의에서는 주유周瑜를 홧병으로 죽이고 조문가서 쇼하는 장면이나 맹획孟获을 잡고 보여준 칠종칠금七纵七擒의 모습, 적벽대전赤壁大战을 일으키기 위해 동오东吴의 대신들과 설전诸葛亮舌战群儒을 벌이는 모습, 가정街亭 대패 후 서성西城에서 보여준 공성계空城计 등이 있으나 실제와 다르니 언급의 필요가 없고 삼국지三国志에 따르면 진수陈寿가 평가한 대로 제갈량은 평생 법가法家 사상을 따르며 신중하게 살아와서인지诸葛一生唯谨慎 후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반면 그의 맞수인 사마의司马懿는 당시 절정을 넘기고 있던 조조 앞에서도 그 야망을 숨겼고 나중에 조상曹爽 앞에서도 그 본심은 숨긴 채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일거에 위魏나라 조정을 움켜쥐는 후흑 신공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종오는 후흑이야말로 성공한 정치인이 갖는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평가했음이니...

오늘날 우리나라 돔구장 의원들도 모두 후흑의 달인인가? 아님 막싸움의 달인인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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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6 04:30 百家爭鳴/一己之談
드디어 선덕여왕 33편이 방영되었습니다.
참 사람이 간사하죠? 블루먼데이 증후군이라고 하잖습니까? 월요일이 그냥 싫은...
근데 요즘은 월요일이 무지하게 기다려집니다. 목이 빠져라 선덕여왕 기다리느라 말이죠.

일요일은 하루가 여삼추一日如三秋 같던 걸요.^^

유신과 덕만은 두번째 비제의 답을 찾습니다. 그리고 유신랑이 승리 포인트를 획득하구요.
이제 승부는 무술 비제를 겨루게 될 세번째 비제로 미뤄졌네요.

두번째 비제 답인 '삼한통일'에 대해 덕만은 문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눕니다.

덕만이 삼한통일이라는 대업 완성을 위해 여자인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냐고 묻자 문노는 천연덕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역시 문노는 문노네요. 제가 앞서 문노가 여자는 재주가 없어야 제맛 男人有德便是才,女人无才便是德라는 시대사상에 지배를 받아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다 이야기했으나 그는 여성의 능력을 낮춰보는 그런 소인배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제가 소인배의 심보로 그의 큰 도량을 넘겨짚었나보네요.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
그가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 것은 부마가 되려하는 귀족세력 간 충돌, 귀족 및 민간에 만연해 있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관념을 걱정한 것이지요. 물론 문노가 이런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죠.ㅋㅋ 제가 뒤끝이 좀 있어서리~

서경書經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牝鸡无晨。牝鸡司晨,惟家之索。《书经·牧誓》
암탉은 본디 새벽에 울지 않거늘 암탉이 새벽에 우니 그 집안 운이 다했구나.

우리나라도 아직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리고 아들을 둔 어머니들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사상에 속박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이거 보면 중국 주周나라와 춘추시대春秋时代의 공자孔子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우리가 아직도 좋아라 마지 않는 세계 4대 성인이신 공자님 말씀을 담은 논어論語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唯女子与小人难养也。近之则不孙,远之则怨。《论语·阳货》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 가까이 지내면 기어오르고 멀리하면 지랄한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종법宗法제도를 통한 남성의 주도권 장악이 너무나 자연스레 이루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좌측 사진에 보면 頭號大混蛋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공자를 "울트라 캡숑 병신"이라고 욕한 것이며 중간 사진은 홍위병이 공자 생가에서 그의 동상을 철거하는 장면, 그리고 우측은 다 아시다시피 모택동입니다. 근데 좌측 사진의 한자가 모두 정자체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간자체가 보급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랬기에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공자는 홍위병의 제1 타도대상이 되었습니다. 비공批孔(공자를 비판한다)이 강렬히 이루어졌죠. 모택동毛泽东은 "여자는 천하의 절반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女人能顶半边天"이라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동안 2500여년 간 중국을 지배했던 공자를 필두로 한 유학관념은 부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과오와 공자의 유학사상에 대한 포폄은 뒤로 하더라도 여하튼 오늘날 중국이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장 활발하고 가정내 여성의 위상이 가장 높은 건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죠.^^

여하튼
문노의 대답에 순간 '멍' 때리는 Princess 덕만.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나 공주야 공주! 짜식이 내 아비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진짜 말 막하네' 뭐 이런 생각하는 눈빛입니다.ㅋㅋㅋ
덕만은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가졌습니까?"는 문노의 물음에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개인의 이利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당연히 우리의 딸깍발이 문노 선생님은 "오~이런, 이런, 공주~님. 어찌 대업을 이야기하시면서 개인의 이를 꺼내드셨나요?"하고 되묻습니다. 당연하죠.

君子喻以义,小人喻以利。《论语·里仁》
군자는 의를 중시하고 소인은 이익을 쫓는다.

덕만공주가 쫓으려 하는 이익은 소인이 쫓는 것이고 이 소인이라 함은 앞서 말한 여자와 함께 다루기 힘들다 한 공자님 사상과도 좀 배치되는 면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유학 소양을 갖춘 문노 입장에서는 왠만하면 피했으면 하는 답이었죠. 근데 덕만 공주가 그렇게 말했으니. 하지만 덕만 공주는 "그렇다면 신라는 왜 그런 대업을 꿈꾸었습니까?"라며 되묻습니다. 하긴 '의'와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서리.

신라의 삼한통일 대업 달성을 위해 왕이 되려는 덕만의 이利를 문노는 사사롭다하나 크게 보면 대업달성 자체는 결국 신라에 좋은 대'의'입니다. 반면 신라가 꼭 그 대업달성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는 신라의 '이'일 뿐 삼한땅의 백성들의 '의'는 아닌 법. 당시 상황에서 단순히 삼한통일이라는 '의'를 따르려 했다면 가장 강력한 고구려가 삼한통일을 하도록 백제와 신라가 백기들고 항복을 해야겠죠.
덕만은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려는 걸 내 개인의 이기심으로 몰지 마라'며 문노를 살짝 눌러줍니다.

그리고 덕만은 문노를 그로기 상태로 몰기 위해 "미실이 뛰어나나 성골이 아니므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왕권이 강해져야 할까요? 아니면 신권이 강해져야 할까요?"하고 질문을 던지니까 "왕권이 강해져야 하나 여왕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기준으로, 대업 달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정치인을 눈앞에서 목도亲眼目睹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미실이 그 대업을 이루면 되지요? 왜 꼭 공주님이어야 합니까?"라며 화려한 되치기로 받아칩니다.

그러자 덕만은 심사숙고深思熟虑 끝에 "미실은 왕이 될 능력이 있으나 왕을 꿈꾸지 않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대업 달성을 못합니다. 오로지 꿈꾸는 자만이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전 제가 불가능한 꿈을 꾸듯이 신라도 불가능한 꿈을 꾸도록 할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희망을 모두 가지게 할 것입니다."라고 멋지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까 무릎팍도사에 비rain가 나와서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비가 좋고 싫고를 떠나 저 말만큼은 참 와닿습니다. 제가 실천하기는 어려워서 그렇지만...

중국 대륙과 대만 모두에게 존경받는 손중산孙中山 손문孙文선생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成者为王,败者为寇。
이기면 왕이고 지면 역적이다.

덕만이 말하는 희망이 정말 희망이 될지 아니면 미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환상이 될지는 봐야겠지요.

成则希望,败则幻想。
이루면 희망이고 실패하면 환상이니라.

아마 환상을 쫓아 희망을 찾아낸 이들은 유목민족이 있을 것입니다.

한汉나라가 결국은 극복하지 못한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민족 흉노匈奴, 수隋와 당唐이 조공을 바치면서 달래야했던 돌궐突厥, 역사상 최대강역을 확보한 땅따먹기 최강민족 몽골蒙古이 대표적이겠네요.
(금金과 청清을 세운 여진女真이나 요辽를 세운 거란契丹, 고구려高句麗, 말갈靺鞨 등은 농경, 유목, 수렵을 함께 하는 멀티태스킹 민족이니까 제외^^;;)

흉노는 한汉을 패망시킬 정도의 군사력(앞선 왕소군王昭君 포스트 중 유방刘邦이 백등산白登山에서 대패한 걸 말씀드렸죠?^^)을 가지고도 장성长城 이남에 주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선우单于가 중원 점령이라는 환상을 쫓지 않고 희망을 사람들에게 제시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한나라를 침략해 식량을 약탈하고 무기를 탈취하고 여자를 능욕하는 희망. 여기서 희망은 비전이 아닙니다. 당시 흉노인에게 희망은 열악한 북방 환경을 버티고 이길 수 있게끔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종족 번식 하는 것이었지 농경민족 지도자들 마냥 점령 후 점령지에 정착하며 언제 빼앗기고 침입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비전은 필요없었으니까요.

돌궐은 5호 16국 말기 혜성 같이 등장하여 북방의 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수와 당의 북방 변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죠. 중국인들이 성군이니 현군이니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니 하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황제가 되기 전 진왕晋王으로 있을 때 돌궐은 이세민 세력(당시는 아비 이연李延이 대장이었음)을 근본부터 휘청이게 할만큼 세력이 강했으나 묘하게도 중원 입성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이세민에게 두들겨 맞은게 좀 크긴 했지만요. 그들 역시 흉노처럼 생계형 침략에 몰입하죠. 생계형 침략이 환상으로 흐르면 안되죠 배부르고 등 따시고 출산드라형 여인을 어디 좀 얻어보자는 단순한 희망을 쫓은 겁니다.

몽골은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成吉思汗의 지도하에 영토확장을 합니다. 물론 시작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이었습니다. 덕만처럼. 덕만이 언니인 천명공주에 대한 복수심에 여왕이 되려 하듯이 몽골의 칭기즈칸은 자신의 선조인 카불칸과 아비인 예수게이 바토르가 금金의 모략에 빠져 죽은 데 대한 복수심, 불구대천의 원수不共戴天之仇를 갚기 위해 금나라 정벌에 나서고 자신의 사신을 죽인 호라즘의 무하마드에 대한 복수심으로 서역정벌을 나서며 넷째아들 툴루이의 아들의 죽음을 갚기 위해 양양성 공격을 하는등 복수심으로 정복활동을 하죠. 하지만 칭기즈칸은 그런 복수심에 휩싸이면서도 말과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초원지대만 직접 통치영역에 두고 농경지역인 금의 장성이남 지역은 번국 격으로 장수를 파견해(고구려계라 파악되는 무칼리^^Olleh!!!) 다스립니다. 그는 결코 후계자들에게 쓸데없는 환상을 가지고 중원에 정착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쿠빌라이가 그것을 깨었고 결국 제국은 분열하죠T.T). 그는 부족민에게 희망을 주면 부족민이 쫓아오고 그것을 실현시키면 단결이 된다는, 미실의 리더쉽이 아닌 덕만의 리더쉽 철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철저히 실천에 옮겼습니다.

희망과 환상, 과연 덕만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요?

33편 (하)를 기대해 주세요.^^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이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좋은 글, 양질의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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