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제가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의 백가쟁명 코너에 게재한 문장입니다. 앞으로 본 사이트 및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백가쟁명 코너에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XINGXING-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해당 글 보기 ☞[싱싱차이나의 시사읽기] 금순공정과 진시황, 그리고 문자옥
[싱싱차이나의 시사읽기] 금순공정과 진시황, 그리고 문자옥
오는 4월 10일
구글이 중국시장에서 철수해 홍콩으로 이전할 것이라는뉴스가 나왔다.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모색하던 구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 역시 글로벌 검색시장의 절대자인 구글을 이대로 내치기까지 많은 고심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양측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린 듯하다.
구글의 철수는 중국정부가 추진 중인 금순공정(金盾工程)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구글은 검색에 있어 어떠한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을 모토로 내걸고 각국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1998년
PC별 IP 통제를 통한 이용 이력 조사, 특정
검색어 검색 제한 등 정보에 대한 정부 통제를 골자로 한 금순공정을 중국정부가 추진하면서 구글의 중국시장 철수 사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이런 금순공정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이 많이 떠오를 것이다. Gold Shield Project라는 영문 번역 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순공정은 만리장성(Great wall)을 빗댄 Great Firewall Project(만리방화벽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라고 불리고 있다.
북방 유목민족의 침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미에서 추진한 만리장성. 정보의 유출입을 관리하겠다는 의미에서 추진 중인 금순공정.
이 둘은 모두 정적(靜的)인 방어벽을
통해 동적(動的)인 외부 대상을 제어하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좋게 말하면 그들의 중국인들의 병학(兵學) 사상 가운데
핵심 논리인 이정제동(以靜制動)의 철저한 구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흐르는 물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수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기반으로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결국 외적 방어에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였고 되려 숱한 유목왕조의 창조를 지켜봐야 했고, 금순공정은 현재까지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추진되고 있는 듯 하지만 이미 번장(翻墻, 방화벽을
뚫고 제한을 걸어놓은 IP에 접속을 하는 해킹) 등을 통해
금순공정을 극복해내는 네티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진시황이 500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정보 및 인재에 제한을 두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泰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海水不擇細流,故能就其深。-이사(李斯)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태산이 될 수 있었고
바다는 한줄기 시냇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엄청난 깊이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천하통일을 달성한 진시황과 이사는 통치기반 강화라는 명분으로 분서(焚書)라는 전례 없는 문화탄압을 진행하고 결국에는 만만세가 아닌 2세
만에 멸망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물론 분서 등 문화 탄압은 진나라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진시황뿐만 아니라 금순공정은 중국 역사 속 문자옥(文字獄)라는 정보 사전검열 작업과도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한족(漢族) 문인(文人)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건륭제(乾隆帝)의 문자옥도 그렇지만 한족 출신인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의 문자옥은
그 악랄함과 어이없음에 혀를 차게 할 정도이다.
자신의 본명과 비슷한 글자, 자신의 외모를 묘사하는 듯한
글자 등등 일단 주원장 자신이 “이것은 나와 연관되며 나를 저주하는 내용”이라고 찍는 순간 그 글을 쓴 이는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만큼 억지스러운 사전 검열이 바로 문자옥이다. 사실 봉건시대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매 왕조, 매 군주
별로 문자옥은 다 있었다. 군주와 조정에 반하는 그 어떤 내용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각에서 출발한 문자옥은
엄청난 피바람을 동반했지만 사실 혹은 진실(그 진실이 누구를 위한 진실이든 간에)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100%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정보 통제로 인해 정신문화 등 문화유산이 단절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 방해를 받았을 뿐이다.
인간의 사고와 네트워크에 기인한 여론과 정보는 바둑판과도 같아 변화무쌍한 행마를 거듭하며 4차원적으로 발전, 파생하는 것인데 분서와 문자옥 같은 정부의 정보통제는
그 여론과 정보를 체스판 말들의 행보로 간주하고 3차원적인 장벽으로 억제를 했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고
눈 앞에 보이는 일시적인 성과가 장기적인 성공을 담보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구글 사태로 중국에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나 분서, 명태조
주원장이나 건륭제의 문자옥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되돌아 볼 필요는
있다.
아편전쟁의 주인공 임칙서(林則徐)는 이렇게 말했다.
海納百川,有容乃大。
바다는 많은 강을 끌어안을 만큼 그 크기가
크다.
이미 56개 민족을 끌어안고 있는 중국이 바다와 같이 많은
강을 끌어안고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좀더 대국적인 자세를 가져보길 기대한다.
드디어 선덕여왕 33편이 방영되었습니다.
참 사람이 간사하죠? 블루먼데이 증후군이라고 하잖습니까? 월요일이 그냥 싫은...
근데 요즘은 월요일이 무지하게 기다려집니다. 목이 빠져라 선덕여왕 기다리느라 말이죠.
일요일은 하루가 여삼추一日如三秋 같던 걸요.^^
유신과 덕만은 두번째 비제의 답을 찾습니다. 그리고 유신랑이 승리 포인트를 획득하구요.
이제 승부는 무술 비제를 겨루게 될 세번째 비제로 미뤄졌네요.
두번째 비제 답인 '삼한통일'에 대해 덕만은 문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눕니다.
덕만이 삼한통일이라는 대업 완성을 위해 여자인 자신이 왕이 될 수 없냐고 묻자 문노는 천연덕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역시 문노는 문노네요. 제가 앞서 문노가 여자는 재주가 없어야 제맛 男人有德便是才,女人无才便是德라는 시대사상에 지배를 받아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다 이야기했으나 그는 여성의 능력을 낮춰보는 그런 소인배는 아니었습니다. 역시 제가 소인배의 심보로 그의 큰 도량을 넘겨짚었나보네요.以小人之心度君子之腹
그가 덕만의 여왕 등극을 반대한 것은 부마가 되려하는 귀족세력 간 충돌, 귀족 및 민간에 만연해 있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관념을 걱정한 것이지요. 물론 문노가 이런 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죠.ㅋㅋ 제가 뒤끝이 좀 있어서리~
서경書經에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牝鸡无晨。牝鸡司晨,惟家之索。《书经·牧誓》 암탉은 본디 새벽에 울지 않거늘 암탉이 새벽에 우니 그 집안 운이 다했구나.
우리나라도 아직 이런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리고 아들을 둔 어머니들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사상에 속박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이거 보면 중국 주周나라와 춘추시대春秋时代의 공자孔子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네요.
우리가 아직도 좋아라 마지 않는 세계 4대 성인이신 공자님 말씀을 담은 논어論語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唯女子与小人难养也。近之则不孙,远之则怨。《论语·阳货》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힘들다. 가까이 지내면 기어오르고 멀리하면 지랄한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종법宗法제도를 통한 남성의 주도권 장악이 너무나 자연스레 이루어진 상황이었으니까요.
(좌측 사진에 보면 頭號大混蛋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공자를 "울트라 캡숑 병신"이라고 욕한 것이며 중간 사진은 홍위병이 공자 생가에서 그의 동상을 철거하는 장면, 그리고 우측은 다 아시다시피 모택동입니다. 근데 좌측 사진의 한자가 모두 정자체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간자체가 보급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랬기에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공자는 홍위병의 제1 타도대상이 되었습니다. 비공批孔(공자를 비판한다)이 강렬히 이루어졌죠. 모택동毛泽东은 "여자는 천하의 절반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女人能顶半边天"이라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동안 2500여년 간 중국을 지배했던 공자를 필두로 한 유학관념은 부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과오와 공자의 유학사상에 대한 포폄은 뒤로 하더라도 여하튼 오늘날 중국이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장 활발하고 가정내 여성의 위상이 가장 높은 건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죠.^^
여하튼
문노의 대답에 순간 '멍' 때리는 Princess 덕만.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나 공주야 공주! 짜식이 내 아비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진짜 말 막하네' 뭐 이런 생각하는 눈빛입니다.ㅋㅋㅋ
덕만은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가졌습니까?"는 문노의 물음에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개인의 이利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죠. 당연히 우리의 딸깍발이 문노 선생님은 "오~이런, 이런, 공주~님. 어찌 대업을 이야기하시면서 개인의 이를 꺼내드셨나요?"하고 되묻습니다. 당연하죠.
君子喻以义,小人喻以利。《论语·里仁》 군자는 의를 중시하고 소인은 이익을 쫓는다.
덕만공주가 쫓으려 하는 이익은 소인이 쫓는 것이고 이 소인이라 함은 앞서 말한 여자와 함께 다루기 힘들다 한 공자님 사상과도 좀 배치되는 면이 있잖습니까? 그러니 유학 소양을 갖춘 문노 입장에서는 왠만하면 피했으면 하는 답이었죠. 근데 덕만 공주가 그렇게 말했으니. 하지만 덕만 공주는 "그렇다면 신라는 왜 그런 대업을 꿈꾸었습니까?"라며 되묻습니다. 하긴 '의'와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같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서리.
신라의 삼한통일 대업 달성을 위해 왕이 되려는 덕만의 이利를 문노는 사사롭다하나 크게 보면 대업달성 자체는 결국 신라에 좋은 대'의'입니다. 반면 신라가 꼭 그 대업달성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는 신라의 '이'일 뿐 삼한땅의 백성들의 '의'는 아닌 법. 당시 상황에서 단순히 삼한통일이라는 '의'를 따르려 했다면 가장 강력한 고구려가 삼한통일을 하도록 백제와 신라가 백기들고 항복을 해야겠죠.
덕만은 '그러니까 내가 왕이 되려는 걸 내 개인의 이기심으로 몰지 마라'며 문노를 살짝 눌러줍니다.
그리고 덕만은 문노를 그로기 상태로 몰기 위해 "미실이 뛰어나나 성골이 아니므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왕권이 강해져야 할까요? 아니면 신권이 강해져야 할까요?"하고 질문을 던지니까 "왕권이 강해져야 하나 여왕은 아닙니다. 만약 그런 기준으로, 대업 달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린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정치인을 눈앞에서 목도亲眼目睹하고 있습니다. 미실이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미실이 그 대업을 이루면 되지요? 왜 꼭 공주님이어야 합니까?"라며 화려한 되치기로 받아칩니다.
그러자 덕만은 심사숙고深思熟虑 끝에 "미실은 왕이 될 능력이 있으나 왕을 꿈꾸지 않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대업 달성을 못합니다. 오로지 꿈꾸는 자만이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전 제가 불가능한 꿈을 꾸듯이 신라도 불가능한 꿈을 꾸도록 할 것입니다. 삼한통일의 희망을 모두 가지게 할 것입니다."라고 멋지게 말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까 무릎팍도사에 비rain가 나와서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고 한 말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비가 좋고 싫고를 떠나 저 말만큼은 참 와닿습니다. 제가 실천하기는 어려워서 그렇지만...
중국 대륙과 대만 모두에게 존경받는 손중산孙中山 손문孙文선생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成者为王,败者为寇。 이기면 왕이고 지면 역적이다.
덕만이 말하는 희망이 정말 희망이 될지 아니면 미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환상이 될지는 봐야겠지요.
成则希望,败则幻想。 이루면 희망이고 실패하면 환상이니라.
아마 환상을 쫓아 희망을 찾아낸 이들은 유목민족이 있을 것입니다.
한汉나라가 결국은 극복하지 못한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민족 흉노匈奴, 수隋와 당唐이 조공을 바치면서 달래야했던 돌궐突厥, 역사상 최대강역을 확보한 땅따먹기 최강민족 몽골蒙古이 대표적이겠네요.
(금金과 청清을 세운 여진女真이나 요辽를 세운 거란契丹, 고구려高句麗, 말갈靺鞨 등은 농경, 유목, 수렵을 함께 하는 멀티태스킹 민족이니까 제외^^;;)
흉노는 한汉을 패망시킬 정도의 군사력(앞선 왕소군王昭君 포스트 중 유방刘邦이 백등산白登山에서 대패한 걸 말씀드렸죠?^^)을 가지고도 장성长城 이남에 주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선우单于가 중원 점령이라는 환상을 쫓지 않고 희망을 사람들에게 제시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한나라를 침략해 식량을 약탈하고 무기를 탈취하고 여자를 능욕하는 희망. 여기서 희망은 비전이 아닙니다. 당시 흉노인에게 희망은 열악한 북방 환경을 버티고 이길 수 있게끔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종족 번식 하는 것이었지 농경민족 지도자들 마냥 점령 후 점령지에 정착하며 언제 빼앗기고 침입당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비전은 필요없었으니까요.
돌궐은 5호 16국 말기 혜성 같이 등장하여 북방의 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수와 당의 북방 변경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죠. 중국인들이 성군이니 현군이니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니 하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이 황제가 되기 전 진왕晋王으로 있을 때 돌궐은 이세민 세력(당시는 아비 이연李延이 대장이었음)을 근본부터 휘청이게 할만큼 세력이 강했으나 묘하게도 중원 입성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이세민에게 두들겨 맞은게 좀 크긴 했지만요. 그들 역시 흉노처럼 생계형 침략에 몰입하죠. 생계형 침략이 환상으로 흐르면 안되죠 배부르고 등 따시고 출산드라형 여인을 어디 좀 얻어보자는 단순한 희망을 쫓은 겁니다.
몽골은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成吉思汗의 지도하에 영토확장을 합니다. 물론 시작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이었습니다. 덕만처럼. 덕만이 언니인 천명공주에 대한 복수심에 여왕이 되려 하듯이 몽골의 칭기즈칸은 자신의 선조인 카불칸과 아비인 예수게이 바토르가 금金의 모략에 빠져 죽은 데 대한 복수심, 불구대천의 원수不共戴天之仇를 갚기 위해 금나라 정벌에 나서고 자신의 사신을 죽인 호라즘의 무하마드에 대한 복수심으로 서역정벌을 나서며 넷째아들 툴루이의 아들의 죽음을 갚기 위해 양양성 공격을 하는등 복수심으로 정복활동을 하죠. 하지만 칭기즈칸은 그런 복수심에 휩싸이면서도 말과 양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초원지대만 직접 통치영역에 두고 농경지역인 금의 장성이남 지역은 번국 격으로 장수를 파견해(고구려계라 파악되는 무칼리^^Olleh!!!) 다스립니다. 그는 결코 후계자들에게 쓸데없는 환상을 가지고 중원에 정착하려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쿠빌라이가 그것을 깨었고 결국 제국은 분열하죠T.T). 그는 부족민에게 희망을 주면 부족민이 쫓아오고 그것을 실현시키면 단결이 된다는, 미실의 리더쉽이 아닌 덕만의 리더쉽 철학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철저히 실천에 옮겼습니다.